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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1. 09:00 - 독거노인

<룽산으로의 귀환- 장다이가 들려주는 명말청초 이야기>


명말에서 청초를 살다간 장다이의 삶은 파란만장했다는 미사어구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화려하며 때로는 굴절된 삶을 살았다. 장다이는 그의 글에서 자신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어렵게 살았다 하지만 동양적 글쓰기의 관습에서 본다면 자신을 극히 낮추거나 들어내지 않게 하기 위한 수사어구 일거라 생각된다. 그의 선대들은 명대 권력을 맛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명말이기는 하지만 유교적 분위기 속에서 선비집안의 남자라면 당연히 과거를 준비하고 벼슬을 해서 공명을 떨치는것이 남자의 의무이던 시대였고, 장다이 집안은 이런 사상에 충실했던 것이다. 결국 그 아버지가 글공부에 전념하느라 가사를 돌보지 않아 집안이 어려웠다하지만 장다이가 젊은 시절 풍류에 빠져 있었던 것을 본다면 그가 스스로 자수성가해서 그 많은 한량적 취미를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장다이는 지금으로 치면 상류계층에 속했으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명말의 항저우에서 술과 여자와 풀유를 즐긴 인물이다. 그의 친척들 또한 그 집안의 가풍처럼 집착하는 기인들이 많았으며, 이들은 술에 집착하거나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예술작품 혹은 골동품들을 수집하였다. 장다이도 이에 뒤질세라 집안의 가풍에 따라서 책들을 수집하고 등을 모았으며, 연극을 상연하고 배우들을 후원했다. 어쩌면 이 모든것들을 수용하면서 그의 삶이 풍요러울 수 있었던 것이 집안적 배경뿐만 아니라 그 시대적, 장소적 상황이 잘 맞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다이의 삶을 관통하는 것이 풍류와 낭만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명말과 청대 초기를 살았기 때문에 명말의 퇴폐적 혹은 부폐적 상황들을 목격했고, 그도 명말의 가신 집안이었기 때문에 청에 복종하기 보다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도피적인 삶을 살아야했다. 그 덕분에 호화롭기 그지 없던 그의 삶이 몰락하여 끼니를 걱정하고 풀뿌리로 연명해야하는 순간이 도래했다. 하지만 그가 다시 그의 보금자리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때, 그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역사책을 쓸 수 있었던 상황이다. 명말의 부폐한 상황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그들의 과오를 비판하며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고를 담는 작업이 그의 마지막 생에 가장 큰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장다이가 남긴 굵직한 역사책보다는 그가 잡문들을 모아놓은 짧은 일상의 기록들이 더 애착이 간다. 이는 누구나 살아가는 시간이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을 기록하고 인간의 흉과를 들어내고 삶의 단편들을 수집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인생역정을 겪으면서 때로는 인간적 연민에 휩싸여 집안을 미화하기도 하고 격정적 감정에 휩쓸려 글을 쓰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이 남긴 흔적을 따라서 과거로의 깊은 투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현대에 남겨진 우리들에게 커다란 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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