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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18. 09:00 - 독거노인

<쾌락의 혼돈>


명대의 홍무제는 자신이 겪었던 혹독한 가난과 절망속에서 농민의 고난을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명제국을 건국했다. 농민은 자신의 땅을 가지고 먹을 것을 생산하며 자신이 생산한 것을 기반으로 나라에 세금을 내고 자신이 입을 것을 직접 지어 입으며,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 자연적인 삶을 꿈꾸는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하지만 홍무제가 꿈꾸던 이상적인 농촌 질서는 사회가 안정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서서히 무너졌다. 명대 중기가 되면 신사층에서 옛시절을 그리워하는 한탄스러운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는 상업의 발달로 더 이상 목가적인 농촌 질서가 존재하지 않고 농업 생산은 상업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 논밭을 갈아 엎었으며 시장은 단순한 식용 작물보다는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는 작물들을 빨아들이고 유통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지주로서, 향촌의 지배 계층으로서 신사층에게는 타락이 시작되는 징조였으며 그들이 꿈꾸던 세상으로부터 퇴보였다.


상업의 발달은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통신과 교통이 발달했고, 이를 기반으로 상업의 유통은 더욱 가속화되고 탄력을 받았다. 이런 발전의 수혜는 다시 상업자본가 즉 상인에게 돌아갔고, 슈저우와 항저우를 강남의 대표적인 풍요의 도시로 만들었다. 모든 물자가 몰려들고 거래가 비번해지고 부유층은 그 기반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향유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는 계층의 분화를 촉진했고 돈 있는 상인들은 자본을 바탕으로 더 높은 계층으로의 신분적 상승을 꿈꾸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농공상의 유교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상층에 속하던 신사들은 이들을 천박하게 쳐다보았으며 그들의 계층적 통합에 저항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회가 풍요를 누리는 만큼 신사층도 그 발전속에서 넘치는 향락과 물자에 자신들도 몰입했으며 이를 통해서 계층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고, 계층적 질서속에서 유행을 만들어냈고, 신분적 차이를 강조하는 격차를 유지하고자 했다.


명대 안정적인 시절이 유지되면서 인구는 늘었고, 토지는 한정되었으며, 상업으로 삶을 유지하는 이들이 늘었고, 토지로부터 이탈한 이들은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떠나거나 상업의 그늘속으로 투신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중심에서 벗아난 이들에게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존재했고, 그들을 괴롭히는 수많은 난관들이 존재했다. 관리들은 가혹했고, 모리배들은 항상 그들의 뒤를 노렸고, 타지의 거간꾼들은 그들의 작은 동전 조각마저 뜯어내고자 했다. 


상업의 활성화와 세금의 은납화로 늘어나는 은에 대한 요구에 일본과 스페인, 포푸투칼로부터 무역을 통해서 유입되는 은 덕분에 커져가는 명 경제에 촉매제 역활을 하도록 것이다. 유입된 은으로 완만한 인플레가 있었을 것이고 이는 경제적 활력의 증거이며, 경제적 활력이 집중되었던 강남 지역에서는 향락의 극치를 달렸다. 유흥가와 기녀들, 동자를 통한 동성애 그리고 이 모든것을 씻어내는 참배 행렬이 줄을 이었다. 게다가 교통의 증가로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여행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여행을 위한 이동 경비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였고, 이들을 위한 안내책자도 출판되었다. 게다가 명대에 활성화된 수로와 도로교통 체제는 경제적 여력이 되는 이들에게 여행과 신속한 정보의 잇점을 누릴 수 있게 해줬다. 수로를 통한 이동은 적은 비용으로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했으며, 육로에 존재하던 많은 불안 요소들(산적과 뜻하지 않은 사고)을 줄일 수 있게 했다.


명말을 살았던 장다이는 화려한 삶을 누렸던 최고의 위치에서 명의 멸망과 괘를 같이 해서 쇄락하고 지난날의 삶을 회고하며 노후를 보낸 사람이다. 그는 젊어서 과거를 통한 관료로 진출을 꿈꾸었지만 실패하고 명말의 쾌락속에서 자족적인 삶을 살았던 명말 인사다. 그의 저작을 통해서 보여지는 명말의 화려한 모습은 환락의 극치를 보여준다. 달밤에 기녀를 데리고 뱃놀이를 했고, 친척과 룽산으로 여행을 다녀왔으며, 미동의 손을 이끌었다. 그는 등을 수집했고 화려한 정원을 가진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장다이의 삶은 명말 부유한 지주가 가질 수 있는 상층의 삶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명대말은 이 모든 가치들의 혼탁한 환락 상태였다. 상인과 신사층이 완전히 결합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음에는 분명하다. 청대에 그들이 합쳐진것을 생각한다면 아마 그 단초가 명대에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흔히 집권층은 보수적이고 자기 합리화의 성향을 보인다. 이들은 자신이 누리는 권력과 이익을 지키고 싶어하고 아래로부터 그것들이 침범 당하는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이 지킨만큼 그들은 향락과 퇴폐속에서 자유롭게 거닐수 있기 때문이다. 명조가 망했지만 권력층인 신사층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황제 밑에서 그들의 지속적인 권력과 이익을 누리고 살면서 자연스럽게 청조 문화에 흡수되었고, 변하지 않는 특권을 누렸다. 


명대에 농민의 삶은 어땠을까. 혹은 상업의 언저리에서 살아가던 인민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들은 끊임없는 자연재해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가뭄, 홍수로 인한 기아와 뜻하지 않은 메뚜기떼, 역병의 발생은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것을 한번에 앗아가는 고통이었다. 이들이 쾌락을 맛보고 향락을 즐길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그들이 가질수 있는 향락의 극치는 명절행사나 축제기간동안 마음껏 먹고 즐길 수 있는 정도였을 것이다. 이들은 결코 가혹한 수탈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들을 감싸고 있던 잔혹한 자연재해에서 조차 벗어날 수 없었던 처연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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