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4. 08:30 - 독거노인

<마오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20세기 초반 혁명을 이끌었던 수많은 영웅들 중 그 사후에 비판과 신격화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드물것이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간디조차 그 사후에 추종자들에게는 추앙을 비판자들에게는 잔혹한 비난을 받았다. 이런 사후 평가는 한 개인이 그 나라에 끼친 영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평가일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마오 또한 중국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전설로 신격화되고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위대한 붉은 별로 평가되지만 서방세계에서는 그 잔혹함에 대해서 이미 잘 알려지 있었다. 그의 행적을 따라서 멀리 가지 않아도 아직까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는 문화혁명이 있다. 그 처잠한 동란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커다란 격랑에 휩쓸렸다가 운좋게 살아 남아 그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현재에 이르렀고 그 상처를 되새기며 자본주의 물결속에 요동치고 있는 중국에 살고 있다. 거대한 성장의 물결속에도 굳건한 마오에 대한 애정과 아직도 중국 공산주의의 전통성 기반을 이루는 것은 허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청제국이 무너지고 근대 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던 중국에서 권력 싸움은 진흙탕 싸움이었다. 인민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마오와 장제스의 권력 싸움은 진흙탕속에서 나뒹구는 싸움이었고, 승자가 나타난 후에 얼굴의 진흙을 씻어보니 마오였던 것이다. 이는 긴 역사속에서 중국을 장악하던 왕조의 교체일뿐 진정한 근대국가로의 전환을 모색할 시스템은 없었던 것이다. 이런 혁명적 격변의 결과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준비나 요구들이 묵살되고 오로지 마오가 원하는 세상을 만든 것은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잔인성과 개인적인 권력에 대한 욕구에 기반한 작업의 결과였다 한다.


어쩌면 시골의 무명 공산주의자가 권력투쟁과 음모가 난무하던 중국 공산주의 당 안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권력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적을 제거해야만 하고, 냉정한 정치투쟁의 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히스테릭적 발버둥을 통해서 권력의 기반위에 서도록 강요된 정치투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과거를 가진 마오에게 노년으로 갈수록 약회될지 모르는 그의 독재권력과 지지 세력의 동요로부터 끊임없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도록 만든 요인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속한 당의 권력으로부터 멀어질때면 항상 농민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당을 견제하고 자신의 권력을 되찾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가 그토록 혐오하고 어쩌면 구시대의 유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관료화된 당과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였다. 그에게는 권력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였지만 또한 그를 언제든지 권력으로부터 소외시킬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마오에 대한 치졸할만치의 비난과 사적 약점들에 대한 지적은 역사적 인물로써 마오를 바라보는 눈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게 한다. 특히 역사적 사실들에는 연속적으로 채울 수 없는 사건들과 공간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빈공간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추측과 추론으로 메워지는데, 이때 들어나는 그녀의 혐오감은 실제 그런 추론이 가능할지라도 객관적으로 다른 사실들을 바라보는 이야기들을 침범할 정도로 욕구들이 넘쳐난다.


저자가 마오에게만 집중한 시각을 좀 더 냉정한 시각으로 좀 더 넓은 시각을 유지하면서 마오가 살던 상황의 국제정세와 국내정세를 이야기 했다면 책의 내용이 훨씬 풍부해졌을 것이다. 


마오는 대장정을 통해서 중국 공산당내 지도자로 급부상을 하게 된다. 책에서는 피비린내나는 군인들의 의도적 희생을 하며 단순히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성취한 행군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마오가 자신의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던 시기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공산당은 소련에서 교육받고 파견되어 소련의 지지를 배경으로 실질적인 권력 획득을 한 파벌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마오가 이들을 물리치고 권력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길은 권력투쟁을 통해서 자신만의 세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를 대장정 동안 이룩한 것이며 거기에 따른 상대방들의 희생이 뒤 따랐다.


예안에 자리를 잡은 마오는 안정적 시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공산주의 철학적 기반을 완성하는데, 이는 마르크시즘에서 상당 부분 이탈한 중국적인 사상 기반이었다. 철저하게 근검절약, 자급자족하며 노동자와 일체화된 생활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이에 따르는 심각한 부작용도 같이 수반했다. 예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마오가 주장하는 그런 생활을 받아들이고 그의 사상 개조되어야 했으며 자기 희생을 받아들여야 했다. 농민 기반에 민족주의를 가미한 마오이즘은 처음부터 마르크시즘에 따른 공산주의 혁명과정을 거칠 수 없었다. 중국 자체에 부르지아라 할만한 세력이 미비했고 있다고 해도 소수였다. 게다가 중국의 경제 기반은 농민경제였고 전통적인 신사-지주의 착취 세력이 주였다. 이를 타파하고 공산주의 혁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경제발전만이 아니라 전통적 세력 분쇄도 수반되어야만 했다. 결국 도시 프롤레타리아 기반의 혁명이 아니라 농민이 주축이 된 (어떤 의미에서 전통적인 반란이기도 한)농민 혁명을 이루어야 했다.


저자는 중국에서 국민당이 축출되자 공산군이 도시로 진입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사실 농민 기반의 공산당을 구축한 마오에게는 도시의 공산 세력들은 너무도 먼 조직이었고 그가 실질적인 혁명 세력으로 활용한 농민들에게 도시는 너무나도 생소한 공간이었다. 결국 홍군이 도시로 진입할 때 도시 거주자들은 불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시의 거주자들은 부패한 국민당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일견 홍군에게 동정적인 눈길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들이 앞으로 어떤 세상을 보여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감도 상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마오와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난은 마치 장제스 군의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운이 따르지 않았고 마오의 농간에 결국 무릎을 꿇은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미국이 개입해서 장제스를 돕던 시절에 미국 군사고문관들은 하나같이 장제스 권력의 부패에 혀를 내둘렀다. 무기는 장제군에 넘겨지는 즉시 공산군에 다시 팔려 나갔고, 지원금은 군정에서 챙기기 바뻤다. 게다가 그런 사실들과 미 군사장교들의 충고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미국을 향해서 끊임없이 돈과 무기를 요구했었다. 덕분에 중국에 머물렀던 미국인들은 결국 공산군이 중국을 장악할거라 입을 모을수 밖에 없었다. 


이런 역사적 상황과 분위기에 대한 분석적 파악 없이 오직 마오에 대한 비난만으로 일관하는 책은 어찌보면 엘로페퍼 수준으로 스스로 전락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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