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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7. 09:00 - 독거노인

블루




오랫만에 <아비정전>을 다시 봤다. TV에서 다시보여주는 장국영의 춤추는 장면이 생각나서 다시 보기는 했지만, 이 영화가 내게 남긴 가장 강렬한 인상은 기차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이국의 열대숲이다. 푸른색으로 채색된 열대숲을 지나는 기차의 이미지가 나에게는 여름을 의미하고 여행을 의미한다. 그토록 많은 시간을 돌아다녔지만 내 기억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장면은 거대한 나무 사이로 나 있는 흙길과 그 양옆으로 무심히 배치되어 있는 것 같은 집들과 혹은 흙먼지 일어나는 길속에 던져져 있는 사람들이다. 그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고 한낮의 뜨거운 열기도 뚫고 들어오지 못할 것처럼 어둡고 밀도 짙다.


작년에 다녀온 제주도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딱 한순간은 내 기억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노래 제목같은 제주도의 푸른밤이다. 한적한 어촌마을 같은 곳에서 바라보던 푸른 바다는 시간이 갈수록 짚은 코발트색으로 변해가면서 도저히 어두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비온뒤라 엄청나게 습했지만 그 색깔만큼은 가벼이 떠도는 것 같았다.


이런 푸른 빛깔의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기만 한다. 아마 잃어버리는 시간만큼 그 깊이가 더해지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색깔이기 때문에 내가 그 색을 붙들고 그 깊이를 더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드디어 질질 끌던 책장을 정리했다. 10년 넘게 공부할 기회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움켜쥐고 있던 책들은 이제는 훌훌 털어 버렸다. 과거에 집착한다거나 물건에 집착하거나 하는 일들은 바보 같다고 이야기하지만 집착은 또다른 애정의 표현이니 어쩔 수 없는 건가 보다. 리어카 빌려서 고물상에 넘기고 나니 손에 달랑 6500원만 남는다. 무게는 65kg인데 돈으로 환산하면 6500원이다. 내가 공부한게 결국 6500원어치 밖에 안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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