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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5. 09:00 - 독거노인

<Travels in the Central Parts of Indo-China(Siam), Cambodia and Laos>


현재의 태국은 시암으로 불리며 16세기에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처음 고아에 진출한 포루투칼과 자바, 실론등과 무역을 하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접촉하며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암의 지방에 거주는 하는 라오스 인들은 당시 30~40%정도의 고리대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자신의 산출물과 재산에 대해서 과하게 부과된 세금을 납부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들 산출물의 대부분은 세금으로 나가고 실제 생활은 풍부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얻는 부산물로 살아가는 실정이었다.


M. HENRI MOUHOT는 19세기에 방콕에 도착하여 시암 지방을 탐사한 후에 육로로 시암의 국경을 넘어서 베트남까지 중부까지 간 것으로 보이며, 캄보디아 앙코르왓을 보고 감탄하고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 정취에 감응을 느낀다. 그렇지만 이런 아름다운 풍광에 도달히기 위해서 밀림을 뚫고 현지 관료들에게 뇌물을 받치고 댓가로 교통수단을 제공 받는 형식으로 어렵게 전진한 결과다. 특히, 우기의 밀림은 거머리 때문에 소수 민족들도 여행을 꺼리는 기간이었으나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여행을 한 것이다.


저자는 주로 선교사들의도움을 받아서 선교사들이 머무는 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여행을 많이 했다. 그 당시의 서양인들이 가지는 기독교적 관념이 중심이 되어서 인도차이나를 바라 봤기 때문에 개종하지 않은 동남아 인들은 미개하고 믿을 수 없는 종족이라는 생각을 보인다. 특히, 베트남인들에 대한 편견은 어느정도 편향되어서 나타나는데, 그들은 썩은 물고기와 개고기를 먹는 야비하고 속임수가 능한 교활한 인간들로 묘사한다. 그렇지만 그 썩은 물고기란 결국은 동남아에 흔한 젓갈이다(그가 캐찹이 광둥성의 젓갈로부터 유래 했다는 사실을 알리 없으니).

저자가 안남인(현재의 베트남인)들에 대해 가지는 생각은 그 당시 프랑스와 안남은 전쟁중에 있었고, 머지 않아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할 운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책에서도 열망하듯이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하면 그들의 야만은 개선될 것이고 자신들의 기독교 신에 의해서 이도교적 삶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그가 캄보디아를 방문할 당시, 서열상의 첫번째 왕과 두번째 왕을 만난다. 캄보디아는 시암의 속국으로써 왕자를 인질로 방콕에 보내야 했으므로 둘째 왕은 방콕에서 통치술과 의복, 예식 등을 습득하고 캄보디아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기 위해서는 시암의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반역의 의지가 없음을 보여야 했다.

캄보디아 왕은 시암의 속국으로 살아갔으나 그에게도 야심은 있어서 산속의 소수 민족들을 캄보디아 왕이 관료(군대)들을 보내 정복하고 싶어 했으나 길이 열려 있지 않고 밀림이 장벽 역활을 하고 있어 소수 민족들은 천연의 성에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캄보디아의 상권은 중국인들이 잡고 있었고, 중국인들이 생활은 아편과 도박장이 생활의 중심에 있었다.


저자 M. HENRI MOUHOT는 각 민족에 대한 생각으로 안남인들이 가장 잔인하고 타락한 존재로, 캄보디아인들은 멍청하고 자부심(허영심)만 있는 민족으로, 라오스인들이 가장 성실하고 착한 민족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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