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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0. 09:00 - 독거노인

[인도 고아] 9월 7일




아무리 피곤한 밤이었지만, 3인실 넓은 방에 혼자 누을려니 불안하고 허전해서 TV를 켜놓은 채로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서 끄고 다시 잠 들었다. 지난 저녁에 일찍 잠든 탓에 새벽에 조그만한 소리에도 잠을 깬다. 창 밖으로 쏟아지는 빗소리인지 아니면 내 방안에서 돌고 있는 팬소리인지 구분이 안가는 몽환속에서 계속 잠을 청한다.


이렇게 뒤척이면서 계속 잠을 자다가 깨니 9시다. 이제는 예전처럼 여행을 왔다고 긴장감으로 새벽에 눈이 떠지는 일은 없다. 대충 씻고 해변가로 갔다. 이제 가게 문을 열려는 곳에서 챠이 한잔과 사모사를 사먹고 아침을 해결했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은 세차게 분다. 지금이 우기철이라는걸 날씨가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습하면서 덥지만 그나마 해변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있어서 버틸 수 있을 듯 하다. 더 더워지기 전에 해변가를 한번 걸어보고 싶어서 무작정 해변가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해변이라기 보다는 해안가의 절벽과 돌과 집들로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도 없는 비수기에 아침 이른 시간이니 인적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 비수기가 지나면 돌아올 사람들을 기다리는 버려진 집터와 황량한 해변이 외로운 여행자의 동반자다. 성수기가 되면 이렇게 방치되던 해변가가 어떤 활기를 불러 일으킬까. 


이렇게 황량함과 적막감만 있다고 느끼는 해변가에 누군가 나를 부른다. 떠나지 못하고 붙들려 있는 상인과 꼬마들이다. 그들에게는 내가 희망일지도 모른다. 뜨겁고 배고픈 한철을 보내기 위한 희생물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뜨거운 열기가 나의 마음을 짓누른다. 








안주나 해변 끝까지 걸었다. 몰아치는 바람과 밀려드는 습기 그리고 해무는 낮시간이 가까워 오는데 변하지 않는다. 해변 끝쪽에는 인도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히피들은 어디로 가고 그 자리를 이들이 메우고 있는가. 인도 여행객들은 히피들의 고향을 찾아온 게 아니라 그저 뛰어다닐 공간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서 맥주와 음식을 먹는다. 시기가 어떻든 시간이 언제든 탁트인 이 바닷가에서 마실 수 있는 맥주는 모든 생각들을 지우고 시원한 맥주가 주는 상쾌함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 시킨다. 이 순간 때문에 일년을 기다려 이곳으로 왔다.


해변가는 너무 습하여 도로변을 따라서 숙소로 돌아기기로 했다. 길 따라 펼쳐진 논이 펼쳐진 이곳은 우붓의 논두렁을 걷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히피들이 원하고 서양 여행자들이 찾아던 편안함이 이런 초록이 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공간도 떠거운 열기는 어디에도 감출수 없다. 


여행이 주는 호사




길을 걷고 있는데, 현지 아줌마 하나가 아는채를 하면서 어디에 묵고 있는지 물어본다. 숙소 이야기를 하니 자기도 숙소를 운영한다면서 가격과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안주나 해변 이야기를 한다. 다음달쯤되면 다시 여행자들이 돌아올거라면서.


숙소에 가까워질수록 다시 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확연히 든다. 인적 없던 넓은 공간에서 그나마 도로변을 따라서 틈틈이 메우고 있는 가게들이 나타나자 지친 몸에 안심이 된다. 서양식 샌드위치를 파는 집이 있어서 들어가 간단한 요기를 했다. 인도 애가 서빙을 하길래 인도스럽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산할 때 보니 서양애가 주인이다. 아마 안주나가 좋아서 정착한 서양애일거라 생각된다. 


숙소에 돌아와 씻고 오수에 빠져 들었다. 오수를 빠져 나오는게 힘들다.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걸보니 아직도 피로가 다 안풀린 것 같다. 하지만 마냥 누워 있을 수만은 없어서 눈여겨 봐두었던 식당으로 가서 점심 때 먹었던 빈달루를 시켜본다. 이런 비수기에 모든 식당들이 한산할 때 그나마 손님이 있는 식당은 요리 솜씨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주문한거였는데, 역시 점심 때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가이드 북에 묘사된 맛이 확나는 훌륭한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 후 산책겸 길을 따러서 낯선 곳으로 가보았다. 멀리 갈 생각은 없었지만, 초록색 언덕이 보이는 길을 따라서 무작정 걷다보니 해가 뉘엇뉘엇 지면서 시원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후에 운동하는 아이들과 한가로운 저녁이 다가오는 풍경은 안주나 해변 뒤로 숨겨진 그들만의 공간 같다.


돌아오는 길에 어두운 경찰서 안에서 요란한 노래 소리가 들린다. 호기심에 무단 침입을 하니 경찰이 올라가 보라고 손짓을 한다. 3층에 있는 홀같은 곳에서 한쪽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끊임 없이 연주를 하고 있고 맞은편에 신의 조상이 모셔져 있다. 부녀자들이 올라와서 기도를 하고 뭔가 음식을 집어 간다. 그중에 한사람이 나를 보더니 하나 집어서 내게 건네준다. 맛이 달달한 간식 같은 것인데, 작년 결혼식에서 받았던 엄청 달달한 간식은 아니었다. 


안주나 해변은 해지면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해 버린다. 그저 일찍 숙소로 돌아가기 싫어서 다시 해변 벤치에 앉으니 인도애 하나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뭄바이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학새이라는데, 자기는 무슬림이고 결혼할 여자 친구가 있다고 소개를 한다. 그러면서 나와 맥주 한잔 하자고 하는데, 무슬림 종교를 가진 애가 술과 담배를 한다는 이야기에 선뜻 내키지 않아서 그냥 앉아서 몇마디 주고 받고 헤어져 숙소로 돌아왔다. 시대가 변한것인지 그 아이가 환심을 사기 위해서 던지 말인지 알 수 없는 의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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