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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9. 09:00 - 독거노인

[인도 바라나시] 9월 25, 26일


떠나는 것이 일상처럼 느껴지는 아침에 외로움을 피해서 또 다른 외로움 속으로 도망친다는 것이 가당한 일일까. 일상의 편안함이 주는 외로움은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로 그 가치를 쉽게 바뀐다고 하지만 여행지가 주는 불안감과 긴장감은 쉽게 누그러지거나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과 빈 시간들의 여백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다. 


기다림과 지연의 연속인 여행이 되려는지, 나의 가당치 않은 도피를 인정하지 않음인지 비행기는 지연되고 소식이 없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점점 뒤로 밀릴수록 모두가 화를 내고 흥분하지만 항공사의 태도가 변하거나 보상이 따르지는 않는다. 5시간이 지연되었지만 2장의 식권이 주어진 게 전부다. 인도의 시스템은 때때로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시스템의 룰을 따르고 있다면 어떤식으로던 결과를 이끌어내 주기는 하는 것 같다. 대신 화를 내며 잘못되었다고 따지면 그 시스템에 대항해 보아도 결코 받아 들여지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정해진 룰대로만 움직이는 관습에 젖어 인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 시스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행기의 연착은 홍콩에서도 반복된다. 늦은 시간, 굳은 표정의 세관 검사원들. 시간과 공간은 이미 변경되었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속성인 것처럼 보이는 곳이다. 한밤중인 시간에 단체 관광객 깃발을 쫓아다니고 있는 나이든 관광객들을 보며 홍콩 공안안을 걷고 있자니 기묘한 체험을 하는 것 같다. 


인천공항이든 홍콩 공항이든 심지어 델리 공항마저도 전기 충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 충전기가 있는 곳에는 연령대에 상관 없이 모두 모여서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아직도 간간이 책을 읽는 이들이 있지만 이제는 장소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세상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으며 연결되어 있는 동안은 시간을 소비하는데 무료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여행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비하고 낭비할 수 있는 기회라면 저들에게는 굳이 멀리 떠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바라나시의 하늘은 희뿌옇고 하늘 아래 땅은 그 연막층을 통해서 평면적으로 다가온다.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 채운 도시로 뛰어드는 듯한 공항에는 언제나 호객꾼들의 들끓는 소리가 있다. 인도 어느 도시를 가던지 공항 주변에는 도시로 들어가는 로컬 버스가 있을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다. 도착하자마자 공항 출구부터 따라 붙은 호객꾼을 따라 갈 수도 떨쳐 버릴 수도 없어 그저 이리저리 상황을 살피기만 하던 중 오토릭샤가 마침 공항 주차장으로 들어와 200루피를 외친다.  그저 주어진 기회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아 오토릭샤안으로 가방을 던지고 빠르게 올라탄다. 끝까지 쫓던 호객꾼의 아들이 나를 쳐다보며 목에 손을 긋는다. 어린 호객꾼에게는 겸손함도 두려움도 존중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대상에게 욕설과 악담과 저주를 퍼부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전부 쏟아 부으면 그걸로 족하다. 그들에게 여행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거추장스러운 존재이자 놀이감정도 밖에로 보이지 않을테니까. 


바라나시 기차역에서 오토릭샤를 내렸다. 내가 지불한 돈으로는 여기까지가 전부라는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방향 감각도 거리 감각도 없는 그저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위치 표시가 전부인 곳에서 어떻게 또 다시 여행자들의 거리로 이동할지 막막하다. 어느 가격에 가야할지 몰라 정션앞에 챠이집에서 챠이를 한잔하면서 가격을 물으니 알아서 릭샤왈라를 불러준다. 더위 때문인지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탓인지 릭샤왈라가 부르는 가격이 여행자 가격이라는 걸 생각 못하고 가격 흥정 없이 올라탄다. 여행자들은 그들의 굽은 등과 가느다란 몸뚱아리를 동정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최소한 자신의 댓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길거리에서 무의도식하는 거지들보다 더 동정을 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고돌리아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호객꾼에게 또 잡히고 말았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뚜렷한 방향도 없이 들어섰으니 당연히 그의 먹이감이 되는 것에 불평 할 여지가 없다. 나의 의지도 그에 반하지 않고 그저 편한 댓가에 조금의 가격을 더 지불하고 말리라. 창문이 있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는 적당한 방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에 눌러 앉는다. 남부에 비해서 물가가 더 싸다고 들었지만 이미 여행의 시작에서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호객꾼은 이제 본격적으로 나를 데리고 이리저리 휘두르기 시작한다. 옷가게에 들려 살 의사도 없는 옷을 보고 자신이 보여주는 가게에 가야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배고픈 나에게 식당을 소개시켜주고 소개비 30루피를 받아 돌아선다. 그는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 댓가로 얼마를 더 받을까. 그런 생각보다는 그저 더위에 지친 허기에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무릎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식당 의자에 걸터 앉아 식사를 한다. 


분명 48시간동안 잠을 잔 것은 몇시간 되지 않을 듯 한데, 침대 위에서 눈을 감을 수가 없다. 더위가 나를 깨우는 것인지 내가 원하던 장소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흥분감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단기 여행자가 되었다는 의무감인지 알 수 없지만 밖으로 향한다.


숙소가 시장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숙소를 나서자마자 방향 감각이 없어진다. 바라나시의 골목은 미로 같은 구조라 여행자들이 길을 잃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축제일이 겹친 골목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뚫고 지나가기조차 버거우며 그 힘겨고 더딘 진행에 묻혀 흘러가다보면 결국 미로 속에 갇힌 생쥐 꼴이 되고 만다. 어떻해서든 강가쪽으로 나아가 본다. 





시체가 타고 있는 가트는 호객꾼들의 장사터와 같다. 그들은 가이드를 자칭하거나 가만히 있는 여행자에게 다가와 친절한 설명을 몇마디 던지고 박시시를 원한다. 그들에게 주는 박시시는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갈 것이며 그들을 태울 나무를 사는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나무 1키로는 400루피다. 한 사람의 몸뚱아리를 태우기 위해서는 12키로의 나무가 필요하다고 한다. 다시 이 환멸의 세상을 거치지 않고 영원한 안식을 얻기 위해서 단지 20만원정도의 나무가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가난한 자들에게 그 돈마저 사치이며 단지 성스러운 바라나시 강 근처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을 얻는 것이니 얼마나 가치 없는 몸뚱아리인가. 호객꾼들이 외치는 박시시와 그들의 절망적 호객 행위, 자비에 대한 갈망과는 상관 없이 그저 무심히 강가 쪽을 바라 볼 뿐이다. 시체가 타고 있다는 불꽃은 그저 더위에 연기와 아지랭이를 더 할 뿐이다. 나는 어린 시절 너무 일찍 장례에 대한 감정을 닫아 버렸기 때문에 불꽃이 일고 있는 가트는 그저 더위가 숨을 막히게 하는 강 주변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시장 골목에서 만난 뿌리 파는 이로부터 먹은 몇개의 뿌리와 시장 골목 안에 사람들로 가득한 집에서 먹은 도싸는 쉽게 소화가 되지 않는다. 밤 8시가 조금 지났지만 서서히 가게 문들은 닫히기 시작했고 도대체 낮에 보았던 그 숙소로 가는 길은 어디쯤인지 감이 없다. 아마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길치처럼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그나마 한 자리에서 몇십분동안 빙글빙글 돌고 있으니 보다 못한 가게 점원이 나에게 다가와 길을 잃어버렸는지 묻고 내 숙소를 가기 위해서 골목 어디쯤에서 꺾어져야하는지 알려준다. 간신히 돌아온 숙소 식당에서는 피리와 젬베 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인도의 리듬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그들의 소리가 마치 재즈의 잼 연주처럼 들린다. 피리가 앞으로 나와서 리듬을 만들면 젬베 연주자가 그에 맞춰서 젬베를 두드린다. 음의 반복보다는 어떤 기분에 맞춰서 즉흥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소리 같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무사히 도착한 바라나시로의 긴 여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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