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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0. 09:00 - 독거노인

[인도 바라나시] 9월 28일


여행이 주는 선명함 때문인가 아니면 잠 못 이루던 밤의 선물인가 알 수 없지만 아침 일찍 눈을 뜨게 된다. 몸은 간밤의 더위로 끈적이고 잠을 이루지 못한 덕분에 무겁기만 하니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여간 힘이 든게 아니다. 하지만 이미 열기는 시작되었고 더 이상의 뒤척임이 나에게 어떤 위안을 주지 못할걸 알기에 대충 씻고 밖으로 나간다. 그래도 하루가 지났다고 길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숙소 옥상에서 대충 방향감각을 익히고 가트로 바로 가는 길일거라 생각되는 골목을 빠져 나가니 버닝 가트로 이어진다. 버닝가트는 아침부터 달려드는 알 수 없는 인간들 때문에 조용히 지나치기 힘든 곳이라 그냥 지나갈려는 데 어제 만났던 파카시가 뒤에서 나를 부른다. 어딜 가냐길래 그냥 아침 산책 나왔다고 하니 계단 옆에 앉으란다. 챠이 한잔 마시며 서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 출근 전에 자기 집에 들렸가가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90년대에 묘사된 인도인들의 주거 공간 모습은 2015년이 되었어도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한국인의 주거 공간이 거실을 넓게 가진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탈피하지 못했듯이. 파카시가 거주하는 집은 중산층정도 되어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의 집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물론 게스트 하우스는 오래 된 무슬림집 위에 증축한 형식이라 구조를 바꾸기가 힘들겠지만). 단지 청결함과 넓이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파카시가 낡고 지저분한 입구의 천을 열어 젖히며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우리나라 옛날 어렸을 적 동네에 있던 수도를 생각나게 하는 수도가 놓여 있다. 입구에는 주방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검게 그을린것인지 아니면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어두워 공간이 검게 느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주방을 지나면 바로 침실겸 거실로 사용되는 공간이 나온다. 2살배기 아이는 잠을 청하고 있고 낯선 이의 방문이 주는 어색함 때문인지 아내는 그저 머슥한 웃음만을 보인다. 파카시와는 대조적으로 아내는 마른편에 속했으며 상대적으로 키가 크게 느껴졌다. 인도인들 기준으로 미인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분명 이쁘게 보이는 미인형 얼굴이었다. 





가트 챠이 집에서 사간 챠이와 스틱빵 몇개로 아침을 대신하는 것 같다. 나에게 그 일부를 나눠주며 아침 식사를 함께 한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방에 달린 베란다로 나가보니 바라나시 최고의 전망대를 가진 집에 사는 파카시가 부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물어보니 렌트한 집이 아니고 대대로 살아온 집이라고 한다. 이 일대에 형과 부모님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좋은 전망을 가진 집에 신혼집을 차려준 부모님의 베려가 부러웠다. 


파카시가 나를 자기 집에 초대한 이유는 내가 가진 카메라로 태어난지 얼마 안된 자기 아이의 사진을 찍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걸 인화해서 보내주었으면 한다는 표현이었다. 물론 그의 의도가 불손하건 아니건 나에게는 인도인들이 살아가는 집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파카시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의 과거 사진들을 보니 사진들 모두가 이런 식으로 외국인들과 사귀면서 얻은 것들이다. 그는 문맹이지만 생활에서 익힌 영어로 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이 전하는 추억의 사진들이 하나의 재산이 되어 가는 것이었다. 


파카시 집에서 먹은 간단한 아침은 나에게 부족하다.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서 제대로 아침을 먹는다. 배가 부르고 해가 중천을 향해 가고 있으니 게으른 걸음으로 아씨 가트를 향해 걷는다. 강가를 따라서 걷는 길은 이미 회색빛이다. 뜨거운 열기가 10시밖에 안된 가트 주변을 뻘겋게 달군 것 같다. 어디 하나 그늘이 없어서 그저 브라만들이 뿌자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 세워둔 커다란 양산만이 유일한 피난처다. 하지만 나 같은 여행자는 그런 좁은 공간 속으로 들어갈 입장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걷는 것만이 유일한 피난처다. 






아씨 가트에 혼자 앉아서 멍하니 강가를 쳐다보고 있자니 같은 벤치에 앉아 있던 인도 청년이 말을 건다. 전기공학 기술자라는 쉬리쉬는 혼자 바라나시를 방문했다며 이것저것을 나에게 묻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여느 인도 사람들처럼 그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결혼했는지 등을 묻고 그냥 지나쳐 갈 줄 알았다. 그렇지만 쉬리쉬는 질문이 진지하다. 그는 정치, 경제적 문제들을 꼼꼼히 묻는다. 물론 서로 영어로 이야기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남자들끼리 모이면 하는 여느 일상적인 이야기로 자연히 주제가 옮겨져 간다. 자신도 싱글이기 때문에 집에서 결혼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자기는 담배와 결혼했다고 한다. 대신에 그는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타이타닉을 10번정도 봤다고 한다. 영화가 나온지 꽤 오래 됐지만 그는 아직도 그 타이타닉의 뱃머리 씬이 자기에게는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이야기 한다. 여가 시간에는 주로 게임과 영화를 보면서 지루한 독신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궁금해서 일반적인 엔지니어의 봉급과 집 렌트비를 물어보니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40만원 정도 받으며 한달 렌트비가 20만원정도 나간다고 한다. 인도 물가에 비해서 집세는 상당히 비싼편이다. 게다가 인도에서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고 이야기 한다. 내가 외부에서 보는 인도 경제는 상당히 낙관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몇 안되는 나라인데 경제가 그렇게 안좋냐고 물으니 쉬리쉬는 굉장히 흥분해서 외부에 보도되는 인도 경제는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인도와 실제 인도인이 느끼는 현실은 이렇게 차이가 심한가보다.


만약 쉬리쉬를 만나지 않았다면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피자리아에서 피자를 한번 먹어볼까 했지만 점심 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중간한 시간이 되어서 결국 시장골목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기로 한다. 한낮의 햇빛이 내리쬐는 가트를 따라서 걷는 것은 도저히 힘들 것 같아서 한번도 가본적 없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따라 메인가트까지 가보려 한다. 좁은 골목길이 주는 정감은 더위를 피할 그늘을 제공하며 가게도 없고 호객행위하는 상인들도 없어서 한가로워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도도 없이 오직 육감으로만 걷는 길은 바라나시에 도착한 첫날 숙소를 못 찾아서 한자리를 빙글빙글 돌던 악몽을 재현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동반한다. 


한참을 걷다가 현지인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탈리집이 나타나 그냥 들어가 점심을 해결한다. 탈리집에서 점심을 먹고 더위를 잠시 피해 다시 골목길로 접어드니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한번 무작정 걸었던 골목길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무작정 헤매고 다니던 길이 여행자들의 골목인 뱅갈리토르였다. 이 골목길에 접어들자마자 한국분이 아는 체를 한다. 평상시에는 한국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고 굳이 한국 사람들과 엮이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쳤을 것이지만, 이 골목들은 두 사람이 마주치면 서로 어깨를 마주칠 정도의 공간이기 때문에 인사를 안할 수 없다. 결국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 먹으러 간다는 김선생을 따라서 같이 식당으로 들어간다. 요즘 한국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가는 레와 맥그로간지 일대를 여행하고 방콕으로 가기 위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캘커타로 가는 도중 바라나시에 잠시 들른 것이라고 한다. 바라나시에는 별 흥미가 없어 보이는 김선생은 조기 은퇴를 하고 공부와 여행을 소일 삼으며 남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나 같은 단기 여행자는 꿈꿀 수 없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김선생은 이제 인도가 지겹다고 한다. 그저 그 지겨움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저녁에 김선생과 만나 평상시 마시던 짜이집에서 챠이 한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뿌자가 열리는 가트로 나간다. 이제 여행 막바지에 접어든 김선생은 인도 음식에 질려서 그런지 인도 음식이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나만 시장골목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가트로 갔는데 결국 속이 안좋다고 김선생은 먼저 숙소로 들어가고 나는 어제처럼 보트에 오른다. 여전히 밝은 달과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뿌자의식. 일상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강변의 보트 투어. 흐릿하게 보이는 강변의 풍경만큼이나 내 주위의 모든게 흐릿하게 느껴진다. 지루한 반복이 될지도 모를 이 순간이 시원한 강바람에 날려 그저 모든 것이 만월이 만드는 강위의 한줄기 빛속에 지워져 버린다. 










배에서 내려 가트로 올라오니 맛사지 받으라며 호객꾼이 손과 어깨를 주무른다. 50루피를 부르며 한번 받아보라는 그의 제안에 가트의 계단에 드러눕고 만다. 어차피 몸도 피곤하고 그가 부르는 가격에 더 줄 돈도 없으니 그저 한 30분 누워있고 싶을 뿐이다. 시원한 것인지 누르는 힘 때문에 아픈 것인지 구분도 안되는 가운데 옆에서 구경하던 맛사지꾼의 동료가 같이 주무르기 시작한다. 둘이 동시에 위 아래를 주물러주니 이 보다 좋은 호사가 없을 듯 하다. 인도에서 처음 받아 보는 노천 맛사지가 나쁘지는 않다. 다만 끝나고 내 지갑 안을 뒤져 모든 것을 가져가는 맛사지꾼의 술수가 뻔히 보이면서 그만한 댓가를 지불한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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