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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0. 09:00 - 독거노인

[인도 바라나시] 9월 29일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한숨도 잠을 못 잤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과 부글부글 끓고 있는 뱃속은 갖은 잡념들 만을 끄집어내 머리 속을 어지럽힌다. 어제 무엇을 잘못 먹은 것일까. 도착할 때부터 여기저기 보이는 데로 입에 집어 넣은 간식 거리들이 이제서야 배 속에서 뒤섞여 나를 괴롭히는 걸까. 


몸을 일으키기도 두려운 아침, 어제 약속을 한 김선생을 만나러 나가야 한다는 것도 고역이다. 여행 막바지에 컨디션도 안좋고 인도 음식이 입에 들어가질 않는다는 김선생을 따라서 여행자 거리에서 적당히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골목길을 헤매인다. 서양식 아침메뉴 세트를 시킨 김선생 그리고 토스트와 잼을 시킨 나는 둘 다 꺼끌한 입맛에 적당히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아침 시간을 보낸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려 빈 배속이라 그런지 음식은 그래도 조금 들어가고 속도 조용하니 견딜만 하다. 


나와 비슷한 연배일거로 보이는 김선생은 회사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자기 자신이 회사와는 안맞는 체질임을 느끼고 일찍 은퇴하기 위해서 악착 같이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15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이제는 책을 읽으며 남는 시간에는 여행을 하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취미이자 낙은 고전 공부라고 한다. 어찌 보면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은 가냘프고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높은 도수의 안경을 끼고 여행 동안 깎지 않은 수염으로 인해서 더욱 수더분해 보이는 얼굴 그리고 운동과는 멀어 보이는 체격이 그의 성격과 삶의 방향을 설명해주는 듯 하다. 


이미 한달 전에 바라나시를 방문했었지만 그때는 우기여서 바라나시가 범람한 관계로 제대로 바라나시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김선생과 함께 아침 산책겸 아씨 가트로 향한다. 피곤한 얼굴을 하고 느릿한 걸음 걸이가 그의 피곤한 인도 여정을 대신 설명해 주는 것 같다. 그나마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있는 골목길을 따라서 걷고 있지만 자꾸만 뒤로 쳐지는 김선생을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남 걱정 할 때가 아니지만 어차피 같이 걷고 있는 동행이니 챙길 정신이 있을 때 한번이라도 더 돌아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길을 가다가 골목길을 빠져 나가자마자 약국이 눈에 띈다. 바로 약국으로 달려가 약부터 산다. 과연 약사가 준 지사제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약사는 이틀치만 먹으면 설사는 멈출 것이라고 한다. 


약과 화장지가 있다고 안심하였으나 아씨 가트에 도착하자마자 속에서 반응을 보인다. 결국 내 몸이 정상은 아니라는게 증명된 셈이다. 오늘따라 유난이 덥게 느껴지는 아씨 가트, 게다가 지친 몸에 이미 좋은 북인도 풍경을 질리도록 보고 온 김선생에게는 아무 것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풍경만이 있는 아씨 가트가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일상에서 방금 탈출한 나에게는 이런 풍경마저도 감지덕지하고 받아들이기 쉽지만 이미 일상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김선생한테는 그저 밋밋하기만한 풍경일 뿐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함이 얼굴에 역력이 들어난다. 아마 더운 날씨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골목길을 허우적거리면 걸어왔는데 기껏 이런 풍경만이 존재하는 곳이라니 하는 표정이다. 아마 몸은 지쳐 있고 우기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시원한 바람이 불지 않는 한여름 날씨 같은 바라나시에서 그저 흘러 가는 강물만이 있는 풍경만이 있는 아씨 가트는 아무런 매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에게만 소중한 풍경임을 절감한다. 


여전히 한국 음식만을 원하는 김선생과 뱅갈리토리 거리로 돌아왔다. 거리에 온통 한국말로 씌여진 간판과 식당 이름이 낯설게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몰려 다녔으면 그들을 위한 한국말이 이리도 즐비할까 생각한다. 한국 배낭여행 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저 자신들의 여행 문화를 질적으로 확대하기 보다는 한때의 유행에 맞춰서 한국 사람이 가는 곳만 가고 그들이 보는 것만 보며 그들이 먹는 것만 먹는다. 거기에는 어떤 다양성이 존재하질 못하는, 급박하며 숨막히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와 그래도 닮아 있다. 좀 더 넓은 공간으로 나가서 제도나 공간의 제약이 없어진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데로 살아보고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그들은 그저 그렇게 소비하고 마는 것이다. 


나의 과거 여행에서 항상 컴플렉스로 작용하는 나라가 인도였다. 한참 여행에 빠져 모든 것이 하나의 점에 수렴하던 그 시기에 한국 배낭 여행객들에게는 인도가 하나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배낭 여행이 시작되고 종결되는 지점. 그곳을 갔다오지 않았다면 배낭 여행자라 부를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였고 나는 그 분위기가 싫어서 열기가 식었을 때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생각으로 인도 여행을 떠나겠다고 다짐하며 인도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쳐 버렸고 이제 이렇게 때늦은 여행을 하고 있다. 이제는 배낭 여행이 아니라 직장인으로써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서 들렀다 가는 장소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좀 더 늦게 되돌아 온 덕분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촉박하지만 예전처럼 혈기에 들떠서 바삐 쭃겨 다니던 여행이 아닌 나만의 시간에 맞춰서 느릿하게 걷고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이 땅을 밟게 되었다. 작년 고아에서 만났던 재숙씨가 내게 한 말, "정말 여유있고 부드럽게 여행"하는 사람 같다는 이야기는 내가 십년도 넘게 애둘러 왔기 때문에 가능한 여유일지 모른다.   


그 길에서 김선생님이 여행 중 만났던 한국 아가씨 두명과 다시 조우하여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 중이라는 두 아가씨는 바라나시를 떠나면 서로 헤어져서 네팔과 라자스탄으로로이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은 바라나시에서 다른 거 안하고 쳄베를 배우면서 한동안 머물고 있다고 한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던 김선생 말에 두 아가씨가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를 추천한다. 덕분에 강가 근처의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숙소를 가보게 되었다. 이번 여행 중 한국 음식 먹으러 다닐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같이 휩쓸려 다니다 보니 결국 식당까지 오게 되었다. 한국인 커플이 운영하는 숙소겸 식당은 강가를 바라 볼 수는 없지만 1층 공간에 문들을 전부 없애고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둠으로써 시원한 바람이 잘 들어오도록 만들어놨다. 거기다 바닥은 흰색 타일이어서 시원한 느낌이 들고 그 바닥에서 모두들 한국식으로 좌식으로 밥을 먹고 일을 보고 책을 읽으니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한 느낌이 들고 실제 덜 더웠다. 거기다 한국인이 운영하다보니 모두들 한국말이 그리운 듯 한국어로 대화를 이어가고 정보도 얻어 가니 아무래도 편안한 공간이 되고 있는 듯 하다. 


식사를 마치고 김선생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제 태국으로 가기 위해서 짐을 챙기고 기차역으로 가는 그에게 잠깐 들렸다가 아무런 풍경도 보지 않고 그저 한국 사람 몇명 만나고 가는 바라나시가 어떤 풍경일까 궁금하다. 아마 여행의 의미를 그 나라의 어떤 풍물보다 거기서 만나는 한국 사람들에게 더 의미를 두는 그에게는 바라나시의 특징보다는 그 공간, 그 시간에 함께 했던 이들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과 섞여 있다 홀로 떨어지니 이제서야 몸 상태가 어떤지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동안은 그저 괜찮기만을 바라면서 버텼지만 이제는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백지장 같이 가벼운 몸뚱아리가 느껴지다. 아무리 먹어도 그게 몸으로 흡수되지 않고 그저 통과해버리는 쓰레기 덩어리 같은 지금, 생각나는 건 단과자집의 과자들이다. 평소 같으면 너무 달아서 입에도 잘 데지 않을 음식이지만 지금은 수액을 공급 받는 기분으로 과자들을 사서 먹는다. 


내 몸 상태와는 무관하게 바라나시의 해는 지고 노을이 엷게 내려 앉고 있는 옥상에서는 잠시나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틈을 이용해서 주인집 아들이 연을 날리고 있다. 집의 역사만큼 오래된 무슬림의 전통이 내 방 위에서 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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