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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0. 09:00 - 독거노인

[인도 바라나시] 9월 27일


작은 창문이지만 시원한 전망을 보여주며 뜨거운 오후 햇빛속에서도 시원한 바람을 불어 넣어주던 방은 저녁이 되자 바람 한점 없는 뜨거운 사우나로 변한다. 창문이 서향으로 나 있는 덕에 해가 늦게까지 방안을 달궈놔서 밤새 열기가 식지를 않는다. 그저 뜨거운 침대 위헤서 조금이라도 덜 더운 부분을 찾아서 밤새 뒤척일 뿐이다.





아침 공기의 시원함보다는 창밖으로 보이는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강한 햇살을 받으며 강가로 나가 보았다. 파카시라는 젊은 애가 다가와 자기 소개를 한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가게가 쉬는 날이라 강가에 나와서 그냥 강 구경하며 있다고 한다. 여느 인도인들처럼 검은 색의 피부를 가졌지만 그의 통통한 몸매와 얼굴 때문인지 유난히 아침 햇살에 반들거리는 매끈한 피부가 느껴진다.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은 어려 보이지만 이미 결혼까지 해서 애가 있는 친구다. 이미 결혼하고 안정적인 생활 덕분인지 배도 통통하게 나와 있다. 키가 크지 않은 덕에 더 배가 강조되는 체형이다. 젊은 친구답게 바라나시에서 만나는 많은 외국 여자들 이야기와 술 이야기로 한참 들 떠 있을 때 그 옆으로 파카시의 친구라며 다가온 녀석은 마리화나를 파는 애다. 사두들이 마리화나를 많이 피우기 때문에 가격도 싸고 품질도 좋은 것으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꾸만 나에게 시험 삼아 피워보라고 권한다. 게다가 좀 있으니 한명이 더 끼어들어서는 온통 마리화나 이야기 밖에 안한다. 그 사이 재미 없어진 파카시는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남은 둘은 끈질기게 달라 붙어 더운 열기만큼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시장 근처로 가서 다 같이 챠이를 마시고 버닝 가트로 갔다.


처음에는 버닝 가트를 설명하면서 가이드비겸 박시시를 요구 한다. 내가 어제 이미 박시시를 냈다고 하니 이번에는 버닝가트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들먹이며 그들에게 박시시를 주라고 자꾸만 재촉한다. 그들은 분명 그 건물에서 비루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그저 자기들의 일을 하는 걸로 봐서는 내 옆에 붙어 있는 녀석들과 무관한 사람들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 돈이 그들에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진정 그들에게 돈이 가길 원한다면 내 옆에 붙어 있는 진드기 같은 녀석들이 없을 때 그들에게 직접 박시시를 주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결국 나에게서 어떤 돈을 뜯어내는 수완을 발휘하지 못한 녀석은 헤어질 때 길을 안내해 주겠다며 사람들의 인적이 적은 골목길로 접어들자 직접적으로 돈을 달라고 애걸한다. 너무도 뻔한 수작에 그냥 무시하고 나의 길로 접어 들었더니 다음번에 꼭 자기 가게에 들르라고 뒤에서 소리친다.







가끔 아침을 해결하던 시장 골목의 식당 전경






인도에 도착한 첫날, 정확히 바라나시에 도착한 그 순간, 그 시간이 가장 많은 생각들로 들떠 있는 순간이었다.  떠나지 못했던 아쉬움에 대한 욕망의 찌꺼기와 일시적 도피로 인한 위안이 주는 뒤엉킨 혼란감 속에서 서서히 응어리지는 생각들. 겨우 몇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 응어리진 덩어리의 찌꺼기들은 천천히 가라 앉고 뒤엉킨 생각들, 잡념들은 서서히 잊혀질 거라 믿는다. 아마 불현듯 악몽에서 깨어난 현실처럼 다시 한국 땅을 밟기 전까지는. 시장 안에서  남인도 음식인 도싸를 먹는 아침에 접시를 들고 그저 멍하니 시장 골목을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게 되고 남은 시간들과 지나온 시간에 대한 생각들을 잊게 만든다. 










시장 골목을 빠져 나와 길에 서 있던 현지인에게 아이피몰을 물어보니 자기가 직접 릭샤왈라를 불러 가격을 흥정하더니 나에게 타라고 한다. 아이피몰까지는 걸어갈려고 방향을 물었던 것인데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기 때문에 릭샤를 타야된다고 하면서 50루피 이상은 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덕분에 첫날 탔던 릭샤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힘차게 페달을 밟는 릭샤에 실려서 알지도 못하는 바라나시의 동네 골목길을 휘돌아 아이피몰까지 갔다. 


아이피몰은 나름 시내 중심에서 최첨단을 걷는 곳이라 들었으니 어느정도 기대를 해도 되겠지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화려하거나 깨끗한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퇴색한 복합상가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려다가 귀찮아서 그냥 점심을 해결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나 쐬기로 했다. 식당가로 올라가 로컬 햄버거를 하나 먹고 사람들 구경을 좀 하고 햄버거 하나 먹은걸로는 전혀 양이 안차서 1층에 있는 맥도날드로 가서 햄버거를 하나 더 먹는다. 패스프드점은 전세계 어느 곳을 가나 동일한 맛이라고는 하지만 그 나름데로 현지화도 진행하기 때문에 현지 음식에 대한 서구적 시각의 해석이 어떻게 되었나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마살라 햄버거는 그냐저냥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인도적인 마살라라는 향신료가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햄버거와 만났을 때의 느낌은 그저 향은 밋밋해지고 소금맛은 강해진 정도라고 느껴진다.


쇼핑몰까지는 편하게 왔으니 돌아가는 길은 그냥 길따라 걸어가 보기로 한다. 길도 전혀 모르고 지도도 없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냥 도로를 따라서 뜨거운 햇빛 아래 걷기 시작했다. 바라나시를 걷는 것은 한낮의 더운 열기가 힘든게 아니고 먼지와 매연 그리고 여기저기 패인 길이 걷는 것을 힘들게 한다. 바라나시는 어딜 둘러봐도 회색빛 먼지 색깔에 뒤덮인 도시처럼 보인다. 길에는 여지저기 생기가 있는 모습들이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는 먼지에 뒤덮혀 그 활기를 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도시처럼 느껴진다. 


길을 걷는 도중에 만난 릭샤왈라는 아씨가트까지 100루피를 부른다. 이미 대략적인 가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뻔한 가격을 들으니 깎을 생각도 없이 바로 돌아섰다. 게다가 절반정도는 걸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딱히 릭샤를 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러자 릭샤왈라가 바로 50루피를 가격을 깎으면서 계속 따라온다. 그래봤자 이미 생각이 없는 나는 외면하고 한참을 도로길을 걸었다. 결국 그도 포기하고 제갈길을 가고. 


아씨 가트가 가까워짐을 대충 느낌으로 느껴지는 것이 길거리가 변하기 시작한다. 훨씬 생동감이 넘치고 여기저기 장사하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씨 가트가 가까워질수록 먼지와 매연도 줄어들고 더 밝은 느낌이 나타나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짜이와 라씨를 사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가 조금 더 걸으니 바로 아씨 가트가 나온다. 






아씨 가트는 내가 머무는 곳과 대조적으로 한가롭고 느긋한 느낌이다. 사람들로 북적이지도 않고 호객꾼도 없으며 대부분 현지인들과 수행자 몇몇이 섞여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 나무가 없고 어디 햇빛을 피한 그늘도 없는 황량한 가트와는 달리 아씨 가트는 나무 그늘과 계단 옆에 건물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있어서 이런 한가함을 더욱 만끽할 수 있게 만드는 장소 같다. 나도 현지인들 틈에 섞여서 강가를 바라보며 편안한 오후 시간을 흘려 보낸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그저 강물의 속도에 맞추서 어느 한 곳에 몀춰 소용돌이치다 혹은 유유히 흐는 강물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소다. 


뜨거움이 어느 정도 수그러 들었다고는 하지만 가트를 따라서 걷는 길은 덥기만 하다. 강가쪽이지만 강에서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도 없으며 그늘도 없는 길을 그저 묵묵히 걸어가다보면 그 웅장한 가트의 건물들은 눈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중에 만나 작은 버닝 가트에서 한낮 열기에 달궈진 돌의자에 앉아서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관심조차 주지 않는 이방인으로써 장례 의식을 지켜본다. 바로 눈앞에서는 장례식이 끝난 시체가 타고 있으면 그 옆에서는 새롭게 장례의식을 치르는 상주가 있다. 상주는 슬픈 표정도 기쁜 표정도 없이 그저 의식을 수행할 뿐이다. 의식이 끝나고 시체에 불이 붙자 그는 그저 유유이 가트를 따라 산책하고 있다. 시체들이 타고 있는 가트 주변으로 시체를 나르던 나무들것을 분해해서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있고 그 옆에는 메리골드 꽃을 먹기 위해서 서성이던 염소들끼리 영역 싸움을 하고 있다.  





나의 열망을 태우던 디아




시장 골목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뿌자 의식을 보러 강가로 나간다. 이미 사람들로 뿌자를 볼만한 자리는 다 차고 여기저기 장사꾼들과 호객꾼들의 외치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강가쪽을 더 나아가니 보트 호객꾼이 다가와 100루피에 뿌자 관람과 보트 투어 포함이라고 유혹한다. 일단 반값에 가격을 협상하니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나를 붙들고 시간 낭비 할 수 없다는 듯 그냥 50루피에 타란다. 


뿌자 의식의 성스러움이나 화려함보다는 밤바람이 부는 강위를 달리는 보트에서 바라보는 바라나시의 웅장함과 고요함이 나에게 더 위안을 준다. 그 옛날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 성스러운 강을 위해서 건물을 건설하고 의식을 치렀던 인도인들의 숨결이 강의 안개처럼 퍼져 있는 곳. 한낮의 선명함보다는 한밤의 달빛에 뿌옇게 덧씌워진 이미지 속에서 그 웅장함을 잃지 않는 건물들과 그 속에서 불을 밝히고 어디론가 열심히 걸어가거나 무엇인가 끝난 뒤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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