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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0. 09:00 - 독거노인

[인도 바라나시] 10월 1일


눈이 새벽에 떠지는 데 딱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오늘은 뭘 할까 고민을 해본다. 일상에 억메이지 않는다면 굳이 뭘 할지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을 소비하기 위한 잡생각만을 만들 뿐이다. 물갈이 한 다음부터는 시장 골목에서 먹던 아침보다는 여행자 거리에서 먹는 토스트가 더 입에 맞는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속이 편하지 않으니 한국에서는 먹지 않던 토스트와 잼으로 먹는 아침이 더 편한다.


한가한 식당에 앉아 토스트와 티를 시켜 놓고 일기를 적는다. 길거리에서 마시는 짜이는 5루피면 되지만 이렇게 티팟으로 시켜 놓고 마시는 짜이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일단 달지 않으니 많이 마시기에 부담이 없고 더운 날씨 덕분에 빨리 식지 않아서 시간을 두고 오래 마시기에도 좋다. 뱅갈리토리 골목길은 내가 머무는 시장 골목보다는 한적하고 평화롭게 보인다. 사람 둘이 마주치면 서로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좁은 골목이지만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소음도 없고 일상의 소리들만이 간간이 들리며 그저 조용한 아침의 일상이 흘러 간다.


여행자 거리를 거닐다가 어디선가 젬베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평상시에는 무심히 지나가던 골목길의 음악 소리지만 오늘따라 그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유리문이 열린 틈으로 기웃거리니 안에 음악을 연주하고 있던 이들이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원래 이렇게 부르는 자리에는 별로 개연치 않고 잘 끼어드는 습관이라 그냥 신발을 벗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레게 머리 스타일로 땋아 올린 머리를 뒤로 묶어 넘긴 노년의 음악가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자신의 음악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흥에 취해서 자신의 소리를 쏟아내는 것처럼 자신만의 젬베 소리에 심취해 있는 듯 하다. 낡은 엠피쓰리 재생기를 통해서 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서 발로 흥을 돋구고 박자를 맞추면서 젬베를 두드리고 있다. 


그의 몸은 여느 노년의 인도인들과는 다르게 마른편에 속했으며 헐겁게 입은 상의 옷 사이로 어느 한 곳 군살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난한 이들에게서 보이는 앙상함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평생 호리호리함을 유지했을 듯한 몸매와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듯한 굳은 얼굴은 어떠한 타협을 거부하고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듯한 단단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젬베 소리는 지나가던 이를 불러 들인다. 서로 음악적 깊이를 알고 있는 고수들 같이 그들은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서 인사를 하고 젬베를 두드리던 노인은 젬베를 새로 들어온 이에게 넘긴다. 새로운 이는 사양하지 않고 가볍게 젬베를 두드린다. 전혀 무외한에게도 느껴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젬베 소리다. 두 사람의 소리를 연속으로 듣고 있자니 단순한 타악기인 젬베에서 나오는 연주자의 개성이 묻어 나는 소리가 젬베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젬베 연주가 끝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주인인 듯한 남자가 노인에게 엠피쓰리에 마이크를 연결하여 젬베 소리를 녹음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악한 도구로 지금 이 순간을 녹음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묻어나 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젬베를 배우고 있던 두 아가씨를 만났다. 김선생님 덕분에 이미 구면이라고 아는 척을 하니 반갑게 인사를 한다. 마침 무료하던 차에 시간될 때 같이 식사하자고 인사를 건네니 자신들은 오늘 괜찮다고 젬베 끝나고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다. 덕분에 늦은 점심 약속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서 뜨거운 낮 시간을 보냈다.


핸드폰도 없고 딱히 구두로 약속한 시간과 장소가 아니면 만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조금 일찍 가서 골목 귀퉁이에 앉아서 두 아가씨를 기다린다. 어렸을 적 사람들과 약속하면 항상 붐비는 곳 어딘가에서 서로를 기다리면서 서성이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약속이 틀어지면 서로 연락할 방법도 없었고 무작정 기다리는 수 밖에 없던 시절이라 항상 만나는 곳과 시간을 정확하게 정하던 때였다. 지금은 모두들 언제 만나자고만 이야기하고 정확한 장소와 시간을 잘 정하지 않는다. 다들 핸드폰으로 약속 시간에 맞춰서 연락하고 장소도 그때 그때 변하기도 한다. 


셋이 모이니 딱히 어떤 음식을 먹자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시원한 곳에서 점심을 먹었으면 하는 바램에 인도인이 운영한다는 선재네 가게로 간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식당이라 그런지 아니면 한국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곳이라 그런지 한국 사람들이 끊임 없이 들락거린다.


여행자 거리가 그리 넓은 구역도 아니고 갈만한 곳이 한정적인 곳에서 한국인들만 가는 식당과 숙소가 따로 있다. 이 구역을 벗어나면 한국인들을 보기 쉽지 않다. 내가 만난 두 아가씨도 딱히 이 구역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나처럼 골목길을 따라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고 있는 여행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도 장기 여행자가 되면 그들처럼 정해진 구역으로 들어가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노력할까?


인도 여행에 대한 내가 가지고 있는 컴플렉스와 여름 휴가 때만 만나는 인도에 대한 갈증은 회사를 그만두고 장기 여행 중인 두 아가씨에 대한 부러움과 맞물려 쓰잘 데 없으며 너저븐 하기만 한 이야기들로 얼룩이진다. 원래 점심 식사 후 다시 연습하러 가야한다는 두 아기씨의 일정과는 상관없이 이야기는 밤까지 이어지고 자리를 옮겨 간단한 저녁을 먹으면서 긴 이야기가 이어진다. 왜 그랬을까? 여행에 대한 갈증을 여기서 해갈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사회적인 구속이 없는 곳에서 하고픈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자유 때문일까? 나의 지겹고 지리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으니 아마 두 아가씨에게는 오늘 하루가 인도의 열기만큼이나 끈적이는 하루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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