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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0. 09:00 - 독거노인

[인도 바라나시] 10월 2일


오랫만에 시장 골목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는다. 더운 열기는 항상 같고 골목길의 복잡함도 변함이 없다. 매일이 성스러운 기념일 같고 모두가 그 열기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나도 그 열기를 따라서 아씨 가트로 향한다. 내가 기대했던 아씨 가트의 한가함은 어느 새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분주함이 섞여 들었다. 오늘따라 아씨 가트에 사람들이 늘었다. 그렇다고 메인 가트처럼 많은 인파로 시끄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약간의 분주함이 느껴진다.













아씨 가트에 앉아 있으면 눈의 띄는 할머니 한분이 있다. 딱히 지저분한 차림을 하지 않고 항상 정갈한 모습을 유지하며 짐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할머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눈에 띄어 가트에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나 궁금하였다. 볼 때마다 적은 돈으로 간단한 간식을 끼니로 떼우는 모습을 보았다. 저 적은 돈도 어디서 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아무런 구걸을 하지 않고 있었으며 그저 그늘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널어 놓은 빨래들을 거두고 간간이 자리를 옮겨 다녔다. 







오늘 보니 가트에서 뿌자 의식을 끝낸 이가 베푸는 시혜나 적선을 받으며 살아가는 듯 했다. 그래도 다른 거지들과는 달리 구걸하는 자리에 쉽게 끼어들지 못하고 주위를 겉도는 모습이다. 물론 다른 거지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음식을 먹고는 결코 폭식하거나 양껏 배를 채우지 않고 적당히 먹고 남는 건 다른 이들에게 나눠줄려고 한다. 


저 할머니는 어떤 이유로 바라나시로 흘러 들었을까? 다른 이들처럼 자신의 죽음을 위해서 미리 바라나시로 먼 여정을 거쳐서 온걸까? 바라나시에서 자신을 태워줄 돈을 들고 길거리에 나 앉아 있는걸까? 아니면 단지 의지할 곳 없는 이가 그래도 구걸하기에 나은 장소 혹은 시혜가 많은 장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버티고 있는 것일까?


나무가 만드는 그늘에서 현지인들은 선잠을 청하거나 한담을 나누고 있다.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강을 바라보면 시간을 흘려 보내는 이들도 보인다. 하지만 그들과 내가 다른 것은 한정 시간을 쪼개서 단지 허락된 시간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시간과 돈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선택할 자신이 없는 내 모습에 그저 늙어만 가는 내 자신이 한스러울 뿐이다. 


숙소로 돌아와 매니저와 이야기 하다 내가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떠나야 할 날이 이틀 남은 줄 알고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내일 떠나야 하는 날이 된 것이다. 갑자기 그동안 미뤄뒀던 숙제들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사고 싶던 몇 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급히 시장으로 달려간다. 


시장 골목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이 중에 첫날 내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길을 알려준 이가 생각났다. 그는 항상 웃는 얼굴로 나에게 손짓을 했으며 그의 선한 인상과 잘 어울리는 전형적인 인도의 미남형 얼굴을 가진 청년이었다. 매끈하게 넘긴 머리, 뚜렷한 이목구비, 선한 미소가 합쳐져서 그에게 감춰진 어떤 속임수가 있을까 생각하기 힘들게 만든다. 물론 그가 나에게 직접 물건을 파는 건 아니고 단지 그는 가게로 나를 안내하는 안내인일 뿐이다. 그의 잘생긴 얼굴과는 다르게 그의 영어 발음은 약간의 바람 빠지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안내하는 가게의 주인은 정반대의 인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인도의 초상화에서 보았던 아랑제브 같은 얇은 얼굴을 하고 가느다란 선을 가진 청년이었다. 어려 보이는 얼굴에 기른 수염은 성급하고 성마른 말투와 섞여서 어딘지 불안함과 초조함을 가진 청년처럼 보이게 만들었으며, 상품을 고르는 나에게도 같은 초조함을 느끼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차를 마시며 몇시간이고 천천히 진행되는 무슬림 식의 가격 협상의 전통은 이 골목에 남아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무슬림 전통의 향수와 연과 집들이 남았지만 그들이 물건을 파는 방식은 시장 골목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버린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아는지 가게 주인은 너무나 빠르게 물건들을 펼쳐 보이고 정신 없이 여기저기 물건들을 널어 놓는다. 결국 그 중에 내가 점 찍어 두었던 숄을 선택하고 가격 협상도 단 세번만에 끝냈다. 분명 내가 첫날 시장 골목에 발을 들여 놓고 호객군에 끌려서 들어갔던 가게에서 부르던 가격과는 다른 가격이었다. 가게 주인은 자신이 손해 봤다는 우는 소리를 하지만 어차피 여행자로서 지불하는 가격정도에서 산 가격일거라고 생각되는 가격이었기 때문에 그도 나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그가 나에게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라는 상투적인 인도인의 말을 나에게 던진다.


이른 저녁으로 일본인이 경영하는 메구 카페에서 일본식 튀김 김밥을 먹었다. 음식의 맛은 그냥 여행지에서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맛을 가진 김밥이었다. 한국 숙소의 김밥도 그랬지만 그 이상을 바란다는 것은 전혀 다른 환경의 여행지에서는 무리일 것이다. 여행 중 만난 풍경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 그 자리에 묶여버린 이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펼치기에는 이질적인 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의 폭이 좁을 것이다. 결국은 한국에서 처럼 가장 근본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생계수단을 가지고 살아 남는 게 현실의 선택일 것이다. 그나마 나은 점은 한국에서 처럼 극한의 경쟁에 내 몰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작은 위안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결코 쉽게 살아 남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질적인 시스템은 태생적으로 배타적일 것이고 그들에게 결코 나긋나긋한 미소를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 


메구 가케 여주인의 인상은 내가 일본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상반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상당히 큰 키와 넓은 어깨를 가지고 당당한 모습을 한 여성이었다. 어찌보면 일본인이라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가냘프고 섬세할 것만 같은 그런 이미지와 배치되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어린 아들은 여느 아이들처럼 밥 먹기 싫어하며 자신이 빠져 있는 장남감에 더 애정을 쏟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동양적인 이목구비를 가졌다기 보다 인도인에 더 가까운 피부색과 이목구비를 가졌다.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 동질의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산다는 것이 상실의 의미를 줄 때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인터넷과 휴대폰이 발달해 있는 시대에는 그 상실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듯 하다. 오히려 공간적으로 멀어져 있음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좋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엄마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 여사장의 모습에서 여느 시집 간 여자의 일상처럼 분주하고 수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는 다정함이 느껴진다. 


계산할 때 여사장의 얼굴에는 친절함을 표현하는 미소가 있었고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단정한 친절이 표현되어 있었다. 더운 열기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시원한 가게 안의 에어컨 만큼이나 시원한 느낌을 안겨주는 식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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