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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0. 09:00 - 독거노인

[인도 바라나시] 9월 30일


어제 저녁의 극약 처방이 효과가 있었는지 속이 진정되었다. 몸이야 먹은 게 없으니 공중에 붕 뜬 것처럼 가볍지만 잠자리가 영 불편하여 그냥 새벽 시간에 일어나 강가로 갔다. 새벽의 가트는 낮이나 저녁 시간의 그 번잡함이 그대로다. 물론 한낮의 열기가 새벽부터 시작되고 있으니 사람들의 열기도 거기에 맞춰서 가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게 아닐까. 낮과 새벽의 차이는 강가에 뿌옇게 끼어 있던 지평선의 연무가 좀 더 강가쪽으로 다가와 가트 전체를 흐릿하게 만들었다는 정도다. 역시나 변하지 않는 보트 호객꾼들의 성화에 등 떠밀려서 현지인과 섞여 보트 투어에 참가한다. 어차피 바라나시에 왔다면 새벽 가트를 보트 위에서 한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으니 오늘처럼 일찍 강가로 나온 김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새벽의 강가가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것처럼 몽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서 있는 가트의 전경이 새벽이라고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단지 새벽녘에 바라보는 가트가, 가트로부터 멀어지면서 바라보는 가트의 모습이 훨씬 더 정감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밤마다 보트에 올라 가로등이 밝혀진 가트를 무심히 바라봤지만 그 속에는 불이 밝혀진 화려한 공간과 불꺼지고 텅 빈듯한 공간이 뒤섞여서 마치 흑백 공포 영화가 시작할 때 보여주는 세트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가트에 대한 감정은 새벽에 느끼는 살아 있는 공간이 더 정겨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배를 젓고 있는 보트맨은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길렀으며 우리나라라면 한 50대에서 60대 정도의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보트를 저으면서 인도 가족에게 지나가는 가트에 대해서 간단하나마 설명을 들려주고 얼굴은 어떠한 표정 변화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의무적으로 보트를 젓는 것처럼 아니면 그의 일생동안 해 오던 습관과 같은 일이 몸에 달라 붙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새벽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만큼 변하는 풍경이나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무관심한 표정과는 다르게 인도 가족에게나 나에게나 조용히, 나즈막히 박시시를 요구한다. 어떤 단호한 표정을 가진 이가 입을 조그맣게 열고 성긴 치아 사이로, 마치 굴욕을 무릎 쓰고라도 행해야하는 말처럼 박시시를 요구하는 것은 커다란 압박감을 준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굳은 표정이 나에게는 그를 위한 팁을 줄 마음도 여유도 자리 잡을 공간을 만들지 못한다. 그의 표정만큼이나 내 마음도 굳어버린다. 인도 가족은 그의 계속되는 요구에 50루피 정도를 주고 만다.












가트를 따라 가던 보트는 기수를 돌려 반대편 모래밭에 정박을 한다. 인도 가족은 여기서 목욕을 하기 위해서 옷을 갈아 입고 그 사이 할 일이 없는 나는 그저 배들이 정박한 모래밭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그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구경한다. 보트를 나 혼자 빌려 시간이 충분했다면 말을 타라고 호객하는 호객꾼의 성화에 은근 슬쩍 묻혀서 아마 숲까지 갔다왔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30분동안 정박한다는 보트맨의 이야기가 왠지 그 시간을 넘어서 돌아온다면 보트는 나를 버리고 돌아가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처럼 들려서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을 흩뿌려 놓는다. 













현지인들은 가트가 있는 쪽의 강보다는 반대편 아무 것도 없는 이 모래밭 강쪽이 더 깨끗하도 여기며 그 때문에 좀 더 깨끗한 물에서 목욕을 하고 의식을 행하고픈 이들이 배를 타고 이쪽으로 건너 온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 물 색깔로 이 강물이 더 깨끗하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어 보이지만 그저 강물에 발을 담궈본다. 발목정도 밖에 차지 않는 얖은 강물이지만 발등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하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탁함을 가진 강물이라도 모래가 주는 부드러움은 다른 어떤 강의 모래보다 편안함을 안겨준다. 게다가 강물의 온도가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근 것처럼 온화하다. 햇빛을 피할 그늘만 있다면 발을 담그고 하루 종일 반대편 가트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편안함과 온화함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보트를 탄 덕분에 아침이 길게 늘어진다. 하지만 여느 일상과 다르지 않은 여행자만의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된다. 토스트에 챠이를 마시고 아씨 가트를 향해서 걷는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부지런히 어디론가 향해서 가는 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그저 일상의 아침이 시작되는 한가로운 골목길을 접하게 된다. 채소 상인들이 늘어선 짧은 구간의 골목에서는 무언가를 사면서 흥정을 한다기 보다는 상인과 일상적인 한담을 주고 받고 있는 아줌마가 눈에 들어 온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무슬림 골목길에 들어서면 어느 집에선가 열심히 돌고 있는 베틀 기계의 소리가 골목길을 메운다. 아마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비단들이 열심히 만들어지고 있겠지.


골목길을 걷다가 옷수선집이 나와서 아침에 보트를 타면서 못에 걸려 찢어진 바지의 수선을 맡긴다. 50루피 부르는 것을 30루피에 맡겼다. 그 집에 있는 헝겊으로 하체를 가리고 옷이 수선 되기를 기다린다. 돋보기를 쓴 나이든 노인이 재봉틀을 손으로 돌려서 재 빠르게 터진 자리를 메운다. 


아무리 그늘이 있는 골목길이라도 체력이 떨어지니 걷는게 힘이 든다. 결국 아씨 가트 바로 못미쳐서 쟌더가트 계단에 주저 앉았다. 계단에는 아무도 없고 양옆의 높은 건물 때문에 시야는 바로 앞 밖에 볼 수 없도록 한정되어 있지만 그늘이 드리워지고 바람이 불어서 쉬어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여행자들이 찾지 않는 외진 가트여서 호객꾼마저 없이 그저 바로 앞에서 아이들이 수영을 하며 한 브라만이 뿌자 의식을 치르고 있다. 


















강물에서 수영하고 있던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이 꼬마들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어린 아이 하나가 보트 타라고 호객 행위를 한다. 심심하던 차에 보트에 대해서 흥미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이것저것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옮겨 간다.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숙제까지 끝내고 놀러 나온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보트 만드는데 작은 배는 만루피가 들고 조금 큰배는 오만 루피가 필요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까? 아버지가 보트맨이라고 하니 아버지 옆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까? 궁금해 하는데 꼬마 친구들이 올라와 같이 장난치며 논다. 수영이 끝난 지금 그들의 놀이 대상은 내가 된 것 같다. 




월세 600루피 단칸방에 사는 보트맨의 딸. 이토록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아이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



6개월을 저 베틀에 앉아 있어야 한달에 십만원정도를 번다.



한참을 애들과 장난을 치고 있으니 보트맨이라고 소개하는 슈렉스가 다가온다. 내가 놀고 있는 꼬마는 학교에 다니지만 글을 전혀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고 배드보이란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없는 시즌이라 일거리가 없어 한가하다고 한다. 가트마다 보트맨들의 영역이 정해져 있어서 배들이 함부로 이동해서 영업 할 수 없다고 한다. 메인 가트는 항상 관광객들이 붐비지만 그 외의 가트들은 관광객들이 잘 오지 않는 데다가 배를 타는 이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내가 그의 생활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는 월 600루피를 내는 월세집에 살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애둘이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등록금 내기도 버겁다고 한다. 매달 등록금이 한사람당 600루피씩 내야 하는데, 이 근방에는 국립학교가 없고 사립학교에 다녀야하기 때문에 등록금이 비싸다고 한탄을 한다. 애들한테 들어가는 비용은 교재비와 학용품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혹여나 하는 마음에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써 달라고 하니 그는 문맹이라고 한다. 문맹이 그가 영어를 하는 것은 십대때부터 일한 보트 때문이라고 한다. 거의 매일 외국인과 대화를 하고 그들을 상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앞세대들 모두가 문맹이었고 자신의 자식대부터 겨우 학교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식들의 장래에 대해서 묻는 나에게 아마 지금의 학교 교육은 마치도록 열심히 벌겠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애들의 대학 진학은 꿈꿀 수 없다고 한다. 내가 너무 큰 미래를 섣불리 그에게 물어본 게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인도 사람들의 가옥 구조에 대해서 궁금해하자 자기 집을 직접 보여주겠다고 한다. 너무 친절한 그에게 약간의 경계심이 작동했지만 딱히 다른 일이 더 급한 것도 없고 몸이 늘어져 있는 상태에서 그 경계심은 오래 버티질 못하고 만다. 대로변 길 안쪽으로 들어가자 겉에서는 볼 수 없는 골목길이 나타난다. 골목 안의 어느 대문을 들어서자  예전의 한국 판자촌과 같은 구조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나타나고 그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있는 그의 집이 나타난다. 그가 사는 집은 집이라 부르기에도 너무 옹색 했다. 빠르고 성장하고 있다는 인도의 이면에 존재하는 빈민가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순간의 당혹감은 내 맘에 불안감을 심어준다. 이 현실을 직시할 자신이 없어진다. 


부엌겸 침실겸 모든 것을 해결하는 단 하나의 공간만이 주어진 방 하나에서 이 더운 열기를 어떻게 버티냐고 하니 그냥 사는 것이라는 그의 대답이 돌아온다. 나의 숙소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지만 한밤을 열기를 탈출하지 못해서 잠 못이루는 밤들을 보내는 데, 이들은 온 식구가 그 좁은 공간 하나에서 달라 붙어 이 더운 열기를 견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집들이 커다란 블럭을 이루고 있는 이 동네는 하나의 집주인이 관리하고 있단다. 그 주인은 좀 떨어진 곳에 빌딩을 짓고 빌딩을 관리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여기를 보고 나니 파카시의 집을 보았을 때와 비교가 된다. 그나마 높은 공간에 위치해 있어서 좋은 전망과 바람이 조금이라도 통하던 파카시의 집은 고급 주택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결국 내가 보고자 했지만 막상 현실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자 불안한 마음에,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여 황급히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아직도 나는 이런 현실을 들여다 볼 자신이 없나 보다.


오후는 쉴려고 하였으나 마음과 달리 눈은 감기질 않는다. 몸은 여행자 거리에 들어서 있고 습관처럼 골목길을 걸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로 간다. 그저 일기나 쓰려고 했는데, 여자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몇마디 나누다 보니 사장님의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8년동안 바라나시에서 가겔르 운영하셨다는 사장님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지금은 나름 자리를 잡았지만 초창기에는 여러가지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인도의 느린 시스템과 정식으로 사업자 신고를 하고 일처리를 하려고 하니 모든게 어렵고 힘드셨다고 한다. 하다 못해 은행 통장 하나 개설하는데 1년이 걸렸다고 한다. 일반인으로 통장 개설하면 금방 나오지만 사업자로서는 엄청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도 서류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처리하는 인도라 문서가 있으면 절대 거짓말을 하거나 거부를 당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도 인도인들의 책상에 수북히 쌓여 있는 서류가 무엇을 위한건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도는 3차 서비스업이 발전해 있지만 2차 산업은 부족해서 실제 물가는 싸지 않다고 한다. 석유를 수입하니 석유 관련된 것들은 엄청 비싸다고 한다. 게다가 전기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싸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여행자 입장에서 먹고 자는 정도만 해결되면 특별히 필요한 공산품이 없고 불편함을 못 느끼는 상황에서 인도의 현실을 체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장님이 있는 뱅갈토리 골목에 자리 잡은 외국인 업소의 사장들은 나름 자리 잡고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예전 태국의 카오산 로드를 자주 들락거릴 때 들리던 안좋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그래도 인도에 있는 분들은 나름 좋은 인상을 남겨 준다. 사장님의 얼굴에서 자족감이 떠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인도도 여행자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 인도가 인기 있을 때에 비해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하니 이제 인도가 여행지로서 가지는 매력이 다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우울한 생각도 든다. 나는 아직 인도의 반도 보지 못했는데 여행자들은 나의 열망이 한참 불타오르고 있는 인도를 떠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









 저녁을 먹고 여전히 가트로 간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보트 투어를 끝내고 가트로 올라오니 전에 맛사지를 해 줬던 인도인이 나를 부른다. 나한테서 강탈해 가져가다시피한 한국 돈을 들고 은행을 갔더니 한국 돈은 환율이 안 좋아서 천원에 20루피정도로 환전해 줄 수 있다고 한단다. 나에게 분명 천원은 일달러 정도에 해당하는 돈이라고 들었는데 환율이 너무 안좋으니 그냥 돌아왔단다. 그러면서 나에게 인도 돈으로 환전해 달라고 요구 한다. 너무 뻔뻔한 요구에 웃으면서 내가 인도 은행가서 환전해도 똑같은 환율이니 알아서 하라고 모른체 해 버렸다. 그랬더니 자기한테 프리 맛사지를 해 달란다. 아마 자기 딴에는 봉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이렇게 끝나니 억울한가 보다. 내가 장난 삼아 맛사지를 해 주니 가트 윗 계단에 앉아 있던 사두가 "코리안 굿 맛사지"라고 손을 치켜들며 웃는다. 아마 주객이 전도된 장난에 재미 있었나 보다.


사두는 하루에 3시간만 잠을 자고 돈이 생기면 먹고 없으면 그냥 수행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손에는 마리화나를 들고 있다. 저 마리화나는 어떻게 마련한 걸까. 그 돈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보다 영적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마리화나를 피는 것이 그에게는 더 절박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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