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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2. 09:00 - 독거노인

<Twilight in Delhi>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는 올드델리의 골목길.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골목길에는 오래전뿌터 이어져온 전통들이 살아 있다. 뜨거운 한낮이 지나고 저녁 여명이 내려 앉을 쯤이면 아이들은 옥상에서 연을 날린다. 지위가 있는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훈련시킨 비둘기들을 날린다.

이런 무슬림들의 모습은 바라나시를 여행할 때 오래된 무슬림 골목안에서의 체험들을 불러 온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이 몇백년이 되었던 집터가 몇천년전부터 있던 지반 위에 서 있던 그들의 삶과 전통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Mir Nihal은 막 뉴델리가 건설되는 싯점에 올드델리의 골목 안에 살고 있다. 그는 꺼져가는 무굴 왕조의 마지막 불꽃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시간의 흐름에 어쩔수 없이 떠밀려 가고 있지만 미약한 힘이나마 남아 있는 순간까지 그 흐름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시간의 물살에 휩쓸려 서서히 가라앉으며 무기력감을 느낀다. 결국 무굴왕조의 몰락과 마지막 영국통치의 최정점을 보며 역사적 한페이지에 회한을 남기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Mir Nihal의 아들 Asghar, 그는 전통적인 무굴환경에서 살지만 시대의 변화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삶이 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부모가 정해준 혼처를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 들이고 남들이 비웃는 영국식 생활양식을 받아 들인다. 그렇다고 그가 무굴제국을 배반하거나 인도를 배반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영국에 동조하지도 인도에 강한 애착을 보이지도 않은 그저 흔들리는 부초 같은 민초다. 그는 자신의 삶에 가장 열정적으로 매달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 할 뿐이다.

1915년의 뉴델리 건설과 영국왕 즉위식은 소설에서 하나의 분기점같은 사건으로 다뤄진다. 인도인들이 마음속으로 염원하던 무굴 제국은 영원히 사라졌으며 영국 통치가 그 최고 정점을 향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시기. 인도인들이 연약한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기. 아니 그 연약한 기대감이 부숴졌을 때 그들 마음 속에 지펴지는 독립에 대한 욕구들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던 시기다. 한 시대가 끝남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이런 새로운 시작은 하나의 작은 죽음과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무술림들은 삶과 그 배경은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나의 뇌리 속을 스쳐간다. 뜨거운 바람이 만들어내는 강한 훈풍과 그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 더미들. 대추야자 나무에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와 그 아래 고양이들의 울부 짖는 소리. 그리고 그 공간 안에 갖혀서 외부의 오염으로부터 순결함을 지키며 평생을 살아가는 무슬림 여인들. 모든 것이 열기 때문에 나른하게 느껴지면서도 열기가 만드는 압박감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숨결이 뿜어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