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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 14:46 - 독거노인

[태국 치앙마이] 9월 15일


예전 여행 때는 밤마다 비오는 경험을 한 적이 없던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새벽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선잠을 자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침에 일어나 빵으로 아침을 떼우고 시간을 보니, 오늘 신청한 쿠킹 클래스까지 아지고 시간이 많이 남는다. 잠도 깰겸 아침 산택을 나섰다. 약한 비가 조금씩 오고 있지만 출근과 등교길로 바쁜 차량 행렬과 사람들이 보인다. 학교 앞을 지날 때 재잘 거리는 소리가 한가득 메운 운동장이 보인다. 아침에 가장 상쾌한 소리인 듯 하다. 활기찬 도로변과는 대조적으로 골목 안으로 접어 드니 쥐죽은 듯 고요하다. 적막감마저 든다.








8시 50분이 되니 숙소 1층으로 쿠킹클래스 참가자들을 데리러 온다. 태국의 여러 시스템들이 이렇게 시간 잘 지키는 형태로 변하니 오히려 낯설다. 쿠킹클래스가 있는 곳은 숙소 바로 앞 맞은 편이다. 어제 숙소 주인한테 예약할 때 산 요리교실을 신청했더니 만석이라고 이쪽으로 돌렸다. 뭔가 주인장이 강하게 이쪽을 하라고 추천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좋은 의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짜리 요리교실을 신청할까 생각했지만, 혼자 달랑 신청해서 하루 종일 외국애들 틈에 끼여 있을 생각하니 별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맛보기 용으로 신청한거니 반나절이면 충분할 듯 하다.

모이기는 일찍 모였지만 한 30분 동안 모두들 멀뚱멀둥 쳐다보면서 기다리니 담당 선생인 Sue가 들어와서 자기 소개를 한다. 반나절 같이 할 멤버는 친구 사이인 독일 여자애들 2명, 혼자 온 독일 여자애 1명, 중국인 가족 4명 그리고 나다. 진행 순서나 체험해 볼 요리들은 인터넷으로 대충 봐서 특별히 기대하거나 신선하지는 않을 것 같다.

먼저 요리 교실 뒷뜰로 가서 각종 태국야채, 향신료 들을 설명 해 준다. 그리고 요리 교실에서 한블럭 떨어진 시장으로 데려가 시장에서 파는 쌀과 식재료들을 설명 해 준다. 아침이라고 하지만 햇살이 뜨겁게 내리 쬐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오래 머물기도 힘들다.

요리 교실로 돌아와 본격적인 요리 실습이 시작된다. 4가지 요리를 하는데 3가지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선택 요리고 하나는 모두가 똑 같이 만드는 춘권이다. 우리팀 멤버들의 칼질 상태를 보니 다들 불안불안 하다. 선생이 요리 얼마나 자주 하냐고 묻는데, 매일 한다고 대답하는 독일 여자애의 칼질은 매일 요리를 하는 사람의 칼질이 아니다. 게다가 지급된 칼의 날이 굉장히 무뎌서 오히려 힘으로 썰지 않으면 썰리지 않을 정도다. 예리한 칼을 지급해서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다. 중국 가족 중 아들 하나만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나머지 3명은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라 아들이 모든 통역을 담당 한다. 중국인들이 많이 오니 선생도 몇마디 중국어 단어는 아는 것 같다.



내 첫 요리는 캐슈넛을 넣은 닭고기 볶음이다. 그냥 재료 썰고 볶으면 되는 거라 실패할 게 거의 없는 요리지만 눈대중으로 넣는 기름양이 많아서 약간 느끼하게 됐지만 나쁘지는 않다. 집에서 뭔가를 만들 때 그냥 대충대충 들이 붓는 습관이 여기서도 나와 버렸다. 기름기가 많아서 그런지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나니 벌써 배가 부르다.

쉬운 영어와 유머를 섞어서 친근하게 설명중이 강사 수. 뒷쪽에 영어 한마디 모르고 수업을 듣고 있는 중국인 가족이 보인다.



두번째는 샐러드. 나는 파파야 샐러드(쏨땀)를 만들기로 했는데, 이번 요리 교실 과정 중에서 가장 실패한 맛이었다. 매운 고추맛과 젓갈 맛이 잘 버무려져야 하는 데, 동남아 매운 고추에 겁을 먹어서 너무 적게 넣는 바람에 영 맛의 균형이 안 맞는다. 쏨땀을 직접 만들어보니 보기에는 간단한 샐러드지만 만드는 건 김치 담그는 느낌이다. 세번째는 춘권을 만들었는데, 거의 만두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고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 마지막 만든 건 카레 종류 중에서 선택하는 것인데, 나는 태국 북부지역 음식이라고 해서 카우소이를 선택 했다. 카레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종 향신료와 말린 고추를 넣고 절구통에서 거의 떡처럼 진덕진덕한 카레 페이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물기 하나 없어 보이는 말린 재료들을 빻아서 서로 뭉치도록 절구질을 해야되는 거니 완전 중노동이다. 선생이 한팀이니까 서로 돌아가면서 절구질을 하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나중에 다른 클래스에서 덩치 좋은 서양 남자가 얼굴이 뻘겋게 달아 오를 정도로 절구질 하는걸 봤다. 그 팀 모두가 웃으면서 쳐다 보던데, 다음 절구질을 물려 받은 사람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어렵게 카레페이스트 만드니 실제 요리는 금방이다. 우리 팀에서 내가 만든 카우쏘이가 좋아 보였는지 여러명이 사진을 찍는다.

요리 수업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카우쏘이.


만든 요리를 자기가 다 먹는거니 이미 시작부터 불렀던 배가 마지막 그릇을 비울 쯤에는 터질 것처럼 불러왔다. 이 상태로 숙소로 돌아와 오후를 쉬었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가 나오는 Graph.



내가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니, 남이 내려주는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져 오전에 시장 가는 골목 길에 눈여겨 봐 두었던 작은 카페(이름은 Graph)로 갔다. 테이블은 달랑 3개만 있지만, 이쁘장하게 꾸며놔서 홍대에 그대로 옮겨놔도 좋을 만큼 세련미가 있다. 게다가 커피 머신이 VBM 레버 머신이다.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레버 머신인데, 이 머신으로 내려주는 커피 맛이 일품이다. 한국에서 마시던 유명 카페 에스프레소 맛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맛이다. 적당한 산미와 고소한 맛이 잘 어울린다. 커피를 마시면서 보니까 태국 젊은 이들도 오토바이 타고 와서 마시고 간다. 단점은 가게가 너무 좁다.



군것질 거리에 몰두 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전세계 공통인 듯 하다


오늘은 잘 먹어놔서 저녁은 대충 먹어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잘 먹은 분위기 이어서 저녁도 잘 먹으려 태국 북부 음식점으로 걸어 갔다. 식당 가는 길에 학교가 있어 방과 후 쏟아져 나온 애들이 길가 군것질 거리에 달라 붙어 있다. 어릴적 학교 문방구나 노점에서 팔던 불량 식품에 군침 흘리던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 태국 애들이 사 먹는 군것질 거리는 그 때 비하면 엄청 좋은 것들이고 맛도 있어 보인다. 저녁 먹을 생각만 아니면 나두 저기에 끼어서 몇가지 사 먹어 보고 싶었지만 참는다.

치앙마이 길을 가다 보면 동전을 넣고 물통에 물을 받아 가도록 되어 있는 자판기가 종종 보인다. 그 물통을 보고 있자니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파는 5바트짜리 생수가 생각난다. 태국을 처음 여행할 때는 이 5바트짜리 물과 식당에서 주는 물만 마시면서 다녔다. 지금은 10바트짜리 생수가 다양해졌고 물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싸게 팔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10바트 짜리 생수를 주로 사먹는다. 게다가 동남아 여행 후에 담석으로 한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원인 중에 하나가 동남아에서 아무 물이나 마구 마시고 다녀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병이 생겼다. 만약 담석에 동남아에서 마신 물이 기여를 했다면 태국보다는 네팔과 티벳 여행이 더 컸을 것이다.

식당은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다. 내가 시킨 돼지고기 구이는 내 입 맛에 좀 짜다. 태국 구이들이 전반적으로 짠 맛이 나는 걸 감안한다면 보통 정도의 짠 맛일테지만, 예전보다 싱겁게 먹으려고 노력해서 그런지 태국의 짠맛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 혼자 시켜 먹으니 여러개 주문하기도 힘들고 짠맛을 좀 누그려뜨려줄 다른 메뉴 하나가 절실한 저녁이다.

식사 후 식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치앙마이 게이트 쪽의 시장으로 갔다. 저녁이라 시장 안은 이미 다들 문을 닫았고 길거리 노점들이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반대편쪽 노점들과 비교하면 이쪽 노점들이 약간 덜 묵직한 메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별한 음식은 없지만 내 눈에 띄인 초밥 장사는 비주얼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이런 더운 나라에서 왜 일본식 초밥이 유행인건지 모르겠지만 회를 먹는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알록달록한 열대 과일에 밥을 먹는 느낌이다. 분명 일본식 초밥을 제대로 하는 가게가 태국에도 많을텐데 노점에서 파는 초밥이 이렇게 색을 알록달고하게 표현한데는 뭔가 태국인들만의 취향이 있을 거라고 추측 해 본다.





치앙마이 문에서 타페로 이어지는 해자 안쪽 골목길은 상대적으로 한적하다. 여기저기 드문드문 카페들과 바가 있지만 그렇게 밀집되어 있는 곳이 없고 숙소들도 간간히 보여서 한적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타페에서 다시 썽태우를 타고 갓쑤언깨우로 간다. 탑스 마트에 맛들인 느낌이랄까. 하지만 탑스 안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1층에 펼쳐진 노점들이 더 흥미롭다. 여기는 먹거리가 다양하고 그동안 노점에서 보지 못한 것들도 꽤 팔고 있다. 떡 같은게 있어서 사 먹고 싶지만 저녁이라 포기하고 과일 한팩 사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180바트짜리 맛사지 집을 시도 해 보기로 한다. 조용한 태국 음악이 흐르면서 시원한 에어컨에 태국 맛사지를 받고 있자니 천국이 따로 없다. 게다가 주인장이 굉장히 친절하고 비용을 200바트 지불하고 거스름 돈을 거슬러 준다. 150바트 맛사지는 선풍기 바람에 돈을 지불하면 잔돈을 줄 생각없이 바로 주머니에 넣고 안으로 사라져 버린 것에 비하면 대단히 예의 바른 주인이다. 잔도은 맛사지사에게 팁으로 주고 나왔다.

맛사지를 받을 때마다 드는 죄책감은 맛사지가 주는 편안함에 묻혀 버리곤 한다. 동남아이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으로 유지될 수 있는 맛사지는 인건비를 쥐어 짜서 이익을 챙기는한국 같은 곳에서도 꿈 꿀 수 없는 서비스 아닌가. 그들의 노동에 비해서 지불하는 댓가가 너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마 지금 가격보다 높아지면 비용 때문에 아마 맛사지를 받는 데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항상 근육통을 달고 살면서도 비용 때문에 감히 꿈굴 수 없는 서비스를 지금 이 순간 너무나 싸고 편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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