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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 14:50 - 독거노인

[태국 치앙마이] 9월 18일


실제적인 여행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시간 중에서 무엇으로 채우든 가장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가장 좋았던 곳을 갔다 오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밖에 내리는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치앙마에서 가장 좋다고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장 빈번하게 방문한 곳이 시장이니 치앙마이 게이트 쪽 시장으로 간다. 아침 시간에 한번도 가 본적이 없으니 떠나기 전에 아침 시장 모습을 기억에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항상 저녁에 닫혀 있는 모습만 보다가 아침에 골목까지 점령한 시장 모습을 보니 남다른 활기가 느껴진다. 특히 아침 먹거리가 풍부하다. 태국이 많은 가정이 아침을 밖에서 사 먹는 걸로 해결하는 걸로 아는 데, 시장에서 팔고 있는 저 많은 생고기와 생선들은 누가 사 갈까 궁금해 진다. 노점상이나 식당을 상대 하는 걸까?



노상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이지만 그 어떤 커피 전문점 커피보다 맛있다. 이른 아침이 주는 신선함과 커피의 씁쓸함 그리고 차 한잔.




치앙마이 게이트 해자 쪽에 오래된 방식의 커피 노점이 보인다. 떠나는 날에 맛보는 오래된 추억의 맛은 어떨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커피 보다 이렇게 노점에서 뜨거운 물만 부어서 간단하게 유리잔에 주는 커피가 훨씬 좋고 맛있다. 거기다가 차는 덤으로 딸려 온다.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시원하고 한가한 주말 아침을 보여준다.

숙소로 돌아와 일주일치 숙박비를 지불하면서 11시로 되어 있는 체크아웃 시간을 오후 1시나 2시로 늦출수 없는지 물으니, 여주인장은 단호하게 안된다며 연장하고 싶으면 하루치 숙박비를 지불하라고 한다. 단지 2시간 연장하는데 하루치 숙박비를 다 지불하라는 얄미운 주인장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할 지 갑갑 해 진다. 방콕행 비행기 밤 9시, 11시에 체크아웃하면 짐 들고 10시간을 길거리에 있어야 한다. 짐이야 별로 크지 않은 가방 하나니 별 문제가 안될 것 같지만 비가 그칠 생각을 안한다. 날이 더워도 힘들고 비가 와도 힘들다.



크레마가 깨져나가 듯이 내 여행의 끝자락도 깨져나가고 있다


어정쩡한 시간이지만 점심 먹으로 HideOut 카페로 간다. 어제 아침에 지나가면서 보았던 한가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비가 세차게 내리는 와중에도 손님들이 계속 들이 닥친다. 다행이 내가 앉은 자리는 밖에 비가 들치는 자리라 그나마 덜 미안한 마음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홍차를 먹고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서 책을 읽지만 비는 점점 더 거세질 뿐 그칠 생각을 안한다. 너무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커피 한잔을 더 주문했는데, 커피가 너무 맛없다. 결국 graph 가 생각나 비가 약해진 틈을 타서 짐을 챙기고 잠바를 우산 삼아 걸어가기로 한다. 카페를 나서는데 여주인이 조심해서 가라고 친절하게 인사 한다. 들어설 때는 날이 밤처럼 어둡다고 농담을 하더니 떠날 때도 잊지 않고 챙긴다. 아마 이렇게 외진 곳에서 장사 잘되는 이유가 저런 친절함이 한몫 하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마시니 왠지 기부이 좋아지고 남은 시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Central Airport Plaza로 향한다. 어제 저녁에 맛사지 가게에서 떠나기 전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왠지 짐 들고 비 맞으면서 가게 찾아가기가 싫어져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 맛사지는 건너 뛰기로 했다. 아마 다음에 오면 또 들를 수 있겠지. 여행자의 기약 없는 미래로 약속을 떠 넘긴다.

비행기 티켓을 사고 여행을 준비할 때 이렇게 비는 시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아니 이런 빈시간 뿐만 아니라 여행을 위한 가이드 북조차 사지 않고 인터넷으로 내려 받은 지도 한장 달랑 인쇄해서 치앙마이로 날아 왔다. 20년전 긴장감과 초조함, 설레임 등으로 얼룩덜룩해진 마음을 가지고 지나쳐 버렸던 치앙마이. 그 때는 도시가 싫어서 자꾸만 먼 변방으로 도망쳤고 다시 밟고 싶지 않은 땅처럼 스쳐 지나가기만 했었다. 지금은 그 지나간 시간에 채우지 못했던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이렇게 다시 돌아왔지만 그 지나간 시간을 메우기에는 너무도 턱 없이 벌어져버린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만 확인하고 다시 돌아간다. 그 시절의 흥분감과 긴장감, 불안은 없어지고 이게 그 자리에 오래된 감정을 다시금 불러들이고픈 낡은 빈 공간만이 남은 남자가 이렇게 다시금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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