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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31. 09:20 - 독거노인

<체리토마토파이>


요즘 거의 책을 읽지 않고 있다. 아니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간지를 매일 읽고, 가끔씩 비는 시간을 메꿀 잡다한 것들을 읽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 빈 시간들에 종종 끼어 드는 책들이 한두권 있다. 내 관심사가 영원히 머물고 있는 여행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 빈 시간에 끼어든 책들 중에는 늙어감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나이가 들고 노후를 준비해야되는 중장년의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기가 주는 문장의 힘은 아름다운 미사여구나 치밀한 스토리가 들려주는 글의 힘과는 결이 다르다. 자신의 일상을 평범한 문체지만 자신만의 스타일로 들려주는 글에는 밋밋하면서도 뒤늦게 올라오는 단맛 같은 힘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평범한 시골 노부일 뿐이고, 이제는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고 혹은 떠나가고 있다. 그녀의 일상은 평범한 일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시골 농가에 산다면 겪는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사는 게 전부다. 그렇지만 그 소소한 흐름 속에서 지난 날들이 주는 추억과 그 그림자가 남겨 놓은 그늘에 살짝 발을 걸치고 현실을 온전히 견디며 살아간다.

 

그녀가 현대의 시간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늙었을까. 아니면 현재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을 품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의 시간과 불일치를 겪으며 삐그덕 거리지만 그녀의 삶은 그 불일치되는 마찰음에 신경 쓰지 않으며 항상 유쾌하다. 자신이 적응하기에 너무 복잡한 현대 기기 문명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늙고 적응하지 못하는 삶은 불편하고 우울하기까지 하겠지만 그런들 또 어떠리. 그래도 먹고 마시며 즐길 것들이 그녀의 삶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하지만 죽음과 신 앞에서는 그녀도 우울해질 수 밖에 없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별의 발견에 대한 소식은 광할에 우주를 만든 신에 대한 의문과 슬픔이 한껏 베어 있다. '이토록 어둡고 광할한 우주에서 푸른 색으로 빛나는 것은 지구가 유일한 것인가. 이렇게 드 넓은 어둠을 만들어 놓은 신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 것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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