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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24. 10:38 - 독거노인

<우한 다이어리>


지금 나라 전체가 열병에 휩싸인 것처럼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신을 향한 몸부림에 때 아닌 엉뚱한 사람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신인가,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를 구할 것인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 때문에 우리는 어둠에 갇혀 서서히 말라 죽어 가는 존재가 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참고 얼마나 더 인내를 해야 이 열병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을까.

 

나는 이 대답을 <우한 다이어리>에서 찾고자 했다. 아니 답을 원한다기 보다는 기나긴 터널을 걸어가는 우리들이 중간에 만나는 이정표 같은 책일 것이다. 작가 팡팡도 자신의 다이어리가 결코 어떤 해답을 준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녀는 오히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해답을 원한다기 보다는 그 원인을 알고 싶어 했다. 왜, 누가 이 질병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가. 왜 아무도 이 질병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가. 처음 질병이 발병했을 때 사람간 전염성이 없다고 선언한 의사와 당 간부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자신들이 던졌던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으며 길 위에서 혹은 아무도 모른채 어둠에 휩싸여 죽어가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는 이들을 누가 추궁할 것인가.

 

팡팡이라는 작가가 그녀의 일상적 기록들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하자 극좌파와 인터넷 트롤들이 공격을 시작한다. 왜 그녀의 질문에 답하기 보다는 그녀를 공격한 것일까. 그녀가 원하는 것는 어떤 대답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는 요구였다. 그것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해석이 되고 공격의 대상이 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세상은 우리가 접하지 않은 또 다른 질병에 감염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 누윌 곳을 찾아서 길 위를 헤매다 쓰러진 사람들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도시 전체 그리고 중국 전체를 락다운하고 그 속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서 숨막히는 시간들을 보낸 사람들에 대해서 답을 해줘야 한다. 바깥의 세상은 속절 없이 변해 가지만 집안의 풍경은 유리벽 속에 갇힌 죄수처럼 변하지 않는다.

 

지금 이 나라에도 답을 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왜 우리가 그동안 누군가의 희생 덕분에 버티던 지지대를 발로 걷어 차버리고 알 수 없는 수 많은 이들이 그 무너지는 지지대 밑에 깔려 희생을 당해야 하는지. 신은 정녕 길거리 위에서 울부짖는 자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인지를.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신은 어느 누구를 더 사랑하지도, 그 어느 누구를 덜 사랑하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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