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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5. 09:00 - 독거노인

<오만과 편견>


사람이 가진 속성중에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꽤 있다. 그중에서도 오만과 편견. 책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저 단어들은 인류의 가장 저속한 속성중의 하나이면서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건재한 속성들이다. 아니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계급이 분화될수록 더욱 강화되는 속성들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속성들이 손끝에 와 닿는것은 세월이 가르쳐주는 교훈일 것이다.

오만이라는 것은 내가 남보다 더 가졌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위치적 속성이다. 가진것이 권력이든 돈이든 아니면 명예든, 그것은 타인이 가지기 어려운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의 극대화이고 이 자부심은 때때로 오만으로 비춰질 것이다. 또한 위치적 속성에 상관없이 들어나는 것이 편견이다. 자신의 열등 의식에서 발로하는 편견 혹은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한정된 범위 때문에 들어나는 무지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속성들이 귀족사회에서 부르지아 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의 통속적인 연애 소설속에 등장한다. 왕권에 의해서 보호받던 귀족 사회가 신분적 분화와 분열 그 이행과정에서 들어나는 부조화로 인한 사회적 균열은 이 소설속에서 통렬하게 들어난다. 귀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사회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부르지아 세력에 대한 멸시와 무시.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장세에 있었지만 귀족이라는 사회적 신분의 존재감에 억눌린 부르지아는 그 열등감에 열등의식을 들어내는 과정이속에서 남여가 서로 다른 신분속에 속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바라본다. 그들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신분속에 속해 있는 것이다. 서로 이루워지길 원하지도 않는다. 
 
당시 사회에 만연하던 여성의 지위에 대한 열등의식은 여주인공 에리자베스에게는 없다. 하지만 돈많은 남자를 만나서 구원받지 못한다면 평생 노처녀로 늙어야한다는 분위기는 여자를 하나의 재산으로 혹은 가족의 구성단위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이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남아 있던 구세대적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쳐야 하는 여자의 숙명은 앨리자베스의 말들 속에 묻어 있는 냉소적 야유에 잘 들어날 것이다.  

소설의 결론이 통속적인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해서 이 소설이 통속적으로 묻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속적으로 결론을 이끔으로써 이야기속에 존재하는 시대적 규율에 야유를 보내는게 아닐까.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이끌렸다면 오히려 자기 비하적인 소설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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