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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3. 09:00 - 독거노인

<느린 희망>


일상은 매일매일의 시간이 흘러감을 주말이 돌아오고 있음으로 느낀다. 주말이 다 지나가는 하루는 또 다른 일주일의 반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해줄 뿐이다. 여행을 떠남으로써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그저 떠남과 도착만이 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일상이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쿠바는 어떤 모습일까.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이 감성팔이를 위해서 쿠바에 존재하는 낡은 시스템들을 찍어 오거나 남미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관문으로써 돈쓰며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낙후한 공산주의 국가 정도가 아닐까. 나에게 쿠바는 식민지 시절의 번영이 끝나가고 체게레바의 무장 혁명군이 최후의 마지막 공격이 임박할 때 하바나의 클럽에서 탈출 준비를 하며 시가를 태우는 흑백 영화의 한장면처럼 느껴진다. 


저자가 다니는 쿠바는 일반 관광객이나 감성팔이 사진을 채집하려는 사진가들과는 다르게 영원한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며 끊임 없이 투쟁하는 삶의 현장이다. 미국의 코앞에서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맞서서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사회주의를 선언해버린 쿠바. 세계 혁명을 꿈꾸며 죽어간 체의 나라. 아직도 독재자로 장수하고 있는 카스트로. 이런 이미 규정되어 버린 명사들과 형용사로 굳어진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금수조치에 고립되어 후퇴해버린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지속 가능한 유기농의 혁명을 이룩하고 느리지만 멈춰서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개선해 나가고 있는 나라를 구석구석 누비며 그 삶의 체취들을 맡아보려 한다. 분명 누군가의 시선에는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일이 다른 누군가의 눈에 보면 진보이고 인류발전의 역사이기도 한 것은 분명하다. 


이 책에는 다른 여행가들의 책처럼 어떤 관광지에서 느끼는 기나긴 감흥 같은 건 없다. 아니 오히려 한 장소에 한장의 사진과 작가의 짧은 소고가 적혀 있다. 오히려 수많은 형용사들과 현란한 사진들로 독자들에게 쿠바란 이렇게 멋들어지게 낡아버린 장소다 너희가 이곳을 찾는다면 이런 멋들어지게 낡은 시설들에 달러를 뿌려가면서 관광객으로써 대우를 받고 시간을 소비해 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나만의 상상의 여백을 남겨주고 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백지들을 여러장 나눠주고 당신이 기회가 된다면 여기 여백에 나머지를 채워보세요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현실에 안주해서 편암함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일상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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