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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0. 09:00 - 독거노인

<그저 좋은사람>


누구나 인생에 어느 순간은 떠돌고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단순히 정신적이든, 유체적이든 그리고 어느 일순간이든 아니면 영원히 떠돌다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낯선곳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환경이 바뀌는 것을 거부하고 주어진 곳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바친다. 어떤 이는 낯선 곳에 있을지 모르는 희망을 찾아서 떠돈다. 아니면 정신적으로 유랑민이 되어서 방황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정착한 이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던져 넣지만 그들의 후손은 자신들이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뿌리가 이미 내려진 땅에서 주는 양분을 먹고 자라기 마련이다. 자식들이 자라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는 자명한 일이지만 부모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땅속 깊숙이 자리 잡은 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넓게 펼친다 해서 새로운 세상으로 뻣어나갈 수없는 것 처럼 그들은 영원히 정신적 고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들의 심연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뿌리 내릴 지반이 약하다. 오히려 그들의 부모가 마련해준 지반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들을 감싸주지도 못하는 것 같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들을 타국의 낯선 곳에서 하나로 묶어 주고 있지만, 그 가족의 따스함이 낯설음, 부적응과 갈등을 다 덮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낯선곳으로 가지 않은 자들조차 자신의 땅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더 이상 그들을 감싸안은 보호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금. 낯선 곳에서 두려움과 생경함에 노출된 이들은 어떻게 그 의미를 해석해야할까. 


타인과 타인이 부딪히는 공간 속에서 어느 한 순간은 서로에게 표면적으로 이해되고 표면적으로 사랑하는 사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깊숙이 빠져드는 슬픔과 외로움에는 아무런 사랑도 연민도 나눌 수 없는 고독한 동지들이다. 그래서 더 더욱 이질적이 되고 더 이해받기 어려우며 그저 표면 밑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풍경이란 여러번 반복하여 스치다보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친숙함이 자리 잡는다. 하지만 그런 낯선 풍경세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는다하여 완전히 풍경과 하나가 될수는 없다. 풍경은 그저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풍경일 뿐이며, 이해나 설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 마주 칠 수도 있고 끊임 없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수 있지만 익숙한 풍경보다 낯선 풍경이 더 편한한 순간도 존재한다. 삶이란 끊임 없이 흘러가고 있는 풍경을 붙잡을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 스쳐가는 풍경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 중요한 것이다. 나 또한 타인에게는 스쳐가는 풍경과 같은 존재일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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