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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1. 09:00 - 독거노인

<조선의 노비>


역사 관련 책들을 읽다보면 국내 역사책들에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때가 2000년대로 접어 들면서였다. 분명한 선을 긋기 힘들지만 보수적, 국수주의적 시각에서 좀 더 다양한 의견들을 수용하고 보수적 입장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에 대해서 대응을 하는 글들을 읽게 되었다. 


이런 다양한 의견중에서 미국학계로부터 줄기차게 제기되는 이슈 중 하나가 조선시대 노비 혹은 노예 구성 비율이다. 국내 학계가 그 구성 비율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결국은 17 ~ 18세기의 양안 분석에서 나온 30%정도를 조선시대 전반적인 노예 구성비율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쪽 학계에서는 그런 보수적 인정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50% 이상(한양의 한 마을 양안을 분석한 결과 구성전원이 노비인 곳도 있었다)으로 보고 있으며 고려말부터 조선초까지 노예 국가였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보수적으로 잡던 높은 노비 비율쪽을 인정하던 조선시대가 노예 사회였다는 것은 인정해야 될 부분이다. 게다가 그 노예들은 상품으로 취급되었으며 매매와 상속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 분재기에 나타난 노비 상속 문제는 여자 노예가 그 가치가 높았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남자 노비들이 그 다음이었다. 이는 책에도 기술되어 있지만, 조선시대가 종모법을 따라서 모계족이 노비이면 그 자식들은 모계쪽 노비로 신분이 정해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비들을 100명 넘게 소유한 소유주들이 드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 학계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미국이 노예들을 소유하고 대농장을 경영하던 시대에도 그 노예 숫자가 100명을 넘기는 대농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고대 노예국가에 비견되는 사례인 것이다. 


저자는 조선시대를 구성하는 중요 구성원이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조선시대의 노비를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노비들에 대한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주면서 단순히 소유물로써의 노예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이야기 방식은 노비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노비의 일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난 특이한 범주와 그들의 사례들을 끌어와 일반적 노예 상태에 접목 시킴으로써 노비 상태의 가혹함 혹은 비참함을 완곡히 중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특히 이런 방식의 서술에서 문제되는 것은 문헌에 남아 있는 노비들의 상태를 이야기함으로써 타자화되어 있는 노비 상태, 즉, 대상으로써의 노비를 묘사하는 글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정상적인 노비의 생활과 일상성이 배제된채 일반 범주를 벗어난 노예들의 이야기가 잘 포장된 상품처럼 등장한다. 


게다가 이야기를 잘 포장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노비에 대한 이야기들이 저자의 추측과 역사적 사료가 섞여 있어 모든 이야기들이 마치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부터 나온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출전이 있는 이야기일지라도 그 역사적 사료와 데이터 뒷받침되는 근거가 있는 이야기라야 노비에 대한 일반적 시선으로 받아 들일 수 있지만, 그저 사료에 기록되었다는 이야기만으로 일반적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부분은 신뢰성을 얻기 힘들어 보인다. 


이 책에서 놓치고 있는 사실은 조선의 시대적 구분에 따라서 노비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조선의 경제사를 보면 조선초기 대농장을 경영하는 시스템에서 후기로 갈수록 소농화, 집중화가 진행되어 대농장을 가진 농장주보다는 영세화된 농장주들이 대다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다면 노비들도 분명 경제적 시스템의 변화에 따라서 생활 방식 자체가 많이 변화되었을 것이다. 특히, 외거노비라면 조선초기 여기저기 흩어진 농장의 일부를 경작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조선후기로 가면 소작제가 정착이 되고 이에 따라 외거노비들이 노장농화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 17~18세기에 노비들의 대거 이탈은 이들이 소작농으로 변신했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결국 조선시대를 딱히 시대적으로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시간적 변화에 따른 노비들의 변화도 살펴야만 그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갔을것이라는걸 감지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책에 서술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에 노비들의 숫자를 유지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커다란 방식이 종모법이었다. 이 제도는 조선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는 커다란 문제점이었다. 조선의 노예들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커다란 제도적 장치였기 때문에 노예제도 자체를 부정하지 않을지언정 그 증식에 대해서는 커다란 우려를 표명하며 이 제도에 대한 개선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결코 깊게 다루고 있지 않으며 노비제도의 확대에 대해서도 커다란 고민을 하지 않는다. 노예제도에 대한 인정을 할지언정 그에 대한 반성과 그들에 대한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노비제도만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주요 구성원이었던 그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노비제도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반성과 유교적 가치 위에서 존속했던 과거의 기나긴 터널속에 함께 존재했던 타자가 아닌 우리로 끌어 안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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