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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1. 09:00 - 독거노인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하였다>


시간이란 한번 지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 같지만, 그 시간을 지나온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잔영을 남기고 차곡차곡 쌓여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 쌓여 있는 시간은 먼지가 쌓인 것처럼 차곡차곡 빈틈 없이 쌓인 것이 아니라 구멍이 숭숭 뚫린 스펀지 마냥 여기저기 얼기설기 엮여 있고 끊어져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경도 허다하다. 그 빈 공간과 비어 있는 연결줄은 영원히 잃어 버린 물건처럼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시간의 축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그 비어 있는 시간의 공간을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미화된 이미지로 자신만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 시간을 같이 공유했던 사람들끼리 만나서 그 비어 있던 공간의 자리를 서로 맞추어 본다면 아마 깜짝 놀라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자신은 그저 잃어 버리고 있었던 것들이 다른 사람의 기억속에는 존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던져주고 간 이런 푸석푸석한 기억들이 그저 늙어버린 이들이나 되씹는 하찮은 소일 거리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다. 그 시절에는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들에 발생했던 수 많은 사건들보다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사건들, 기억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반추할 여지가 없다. 그저 지금 당장 주어진 현실의 일들을 겪어내기도 버거울 때가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잘 헤쳐나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대견스러워하며 앞으로 더 많은 시간들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에게 스스로 칭찬을 하기 바빳을 것이다. 


이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주어졌는지 헤어릴 수도 없으며 오히려 지나온 시간들이 자취가 더 많게 느껴지는 순간 앞에 서 있기 때문에 나는 과거에 매달리는 이들이 가엽게 느껴지기 보다는 나의 동지들처럼 느끼게 된다. 그들이 남기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과거에 대한 회한이 나에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만드는 것도 내가 그 시간들을 같이 겪었다는 동지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손에 닿으면 순식간에 먼지로 변해버려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 둘씩 올라온다. 누구에게나 있는 부모님, 형제, 할머니, 할어버지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 어느 것 하나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시공간 안에 놓인 존재들이다. 그 시간에는 절실히 느낄 수 없고 알수도 없던 소중함이 이제는 닿기만 해도 부셔져 버릴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한번에 다 펼쳐 볼 수 없을 것만 같고 다 부셔져 사라져버리기 전에 한번에 빨리 훓어봐야만 할 것 같은 기억들이다. 그들은 누구의 부모, 형제도 가족도 아닌 우리들의 가족이었고 형제들이었다. 지금도 우리 곁에 존재하고 항상 가까운 곳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들은 더 이상 현실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기억속에 존재하는 순간 수많은 살들은 사라져 버리고 가냘프고 희미하게 보인다.


일상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그 시간을 견디해 주는 무엇인가가 없다면 아마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무엇인가 소중한 힘이 줄어들고 현실도 그렇게 각박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쯤이면 서서히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빠져 나간다.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으며 그저 내 안에서만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는 존재다. 범인들은 그걸 그저 추억으로 간직하고 살아갈 뿐이다. 자신의 심장을 꺼내어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듯이 그것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들어내 보여줄 능력이 없다. 아마 의사쯤되는 사람들은 그들의 몸에 칼을 데고 뜨거웠던 심장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 사는 외과 의사들은 바로 그 심장을 묘사하는 글쟁이들이다. 그들은 칼 대신 붓을 들고 자신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었던 과거의 심장들을 꺼내어 보여준다. 그 옛날 뜨겁게 타올랐던 불꽃의 흔적들처럼 시커멓게 남은 그을음 자국같은 과거.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커먼 숯검뎅이도 이쁘게만 보일수도 있다. 그렇게 자신을 태우던 그 불꽃에 데여 아파하던 시간들은 이제 다 어리고 가버렸는가. 아니 현실이 너무 뜨겁고 아프기 때문에 과거의 그 불꽃에 대한 기억은 그저 아기자기한 간지럼 같은 기억들인가. 그래도 그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시간은 앞으로 흘러만 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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