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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2. 09:00 - 독거노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


SF소설들은 내용이 현실적이기 보다는 그저 우리의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어딘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감성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힘들다는 편견을 가지고 읽는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마션> 같은 소설도 감정적인 공감보다는 그 상황에 몰입되어서 긴박감에 단숨에 읽는 일이 있어도 우리의 감정 깊은 곳을 건드릴 수 있는 SF소설들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소설은 그런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배경이 되는 상황은 공상과학적인 면-사실 공상과학이라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정확한 과학적 배경을 가지고 확장된 개념이 적절할 것이다-이지만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된 문제들이 등장한다.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살아가면서 대면하는 윤리적 혹은 사랑에 대한 문제들. 이런 것들이 저자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면들이 있는 책이다.


8개의 짧은 단편으로 구성된 이야기 중에서 개인적으로 선호 하는 단편을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랭크스는 인류가 외계인과 접촉하면서 그들과의 의사소통을 시도하기 위해서 군에 고용된다. 그는 외계인들로부터 과학적 지식을 얻을려는 의도에서 고용된 물리학자와 한팀이 되어 그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던 중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와 같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현재를 묘사하는 언어가 아닌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기술되는 방식이라는 것을 지각하게 된다.


물리학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현대 물리학의 해석적 측면에 대해서 듣는다. 물리학은 결과를 놓고 그 과정을 해석하기 위한 변명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결과가 나타나는 현상은 시간이 흐른 미래이며 미래의 일이 현실에서 수행하는 행위의 결과라면 이미 알고 있는 미래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행위를 시도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둘의 연관성은 랭크스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들려주는 자신의 딸 아이의 성장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토록 애정을 쏟고 사랑을 주고 받던 아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외계어를 배우면서 그녀가 기술하는 이야기에 이미 미래의 일들이 같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 지 이미 예견하고 있지만 그 미래가 불행으로 결말 맺는다고 결코 미래를 포기하거나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우리의 의지가 변영되던 되지 않던 존재한다는 개념은 시간의 방향을 앞으로만 향하도록 배운 우리들에게는 낯설은 개념이지만 그녀에게는 서서히 그 개념을 받아들인다. 과연 우리에게, 혹은 나에게 그런 미래를 알 수 있는 언어를 배운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평범한 인간이 그 시간의 방향성을 무시하고 미래를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지옥은 신의 부재>

닐 휘스크는 아내의 죽음 후 신에 대한 절망감에 사로 잡힌다. 자신이 가진 신체적 결함을 보지 않으며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자신을 받아 들여준 아내가 세상을 떠나 버린 후 그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절망감을 느낀다. 이런 절망감은 결국 신에 대한 분노를 표하게 만든다. 아니 원초적으로 신에 대한 사랑도 없었으니 그 사랑이 절망으로 인해서 분노로 바뀐것도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단순히 그에게 잃어버린 것, 비워짐에 대한 고통을 토로할 대상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이 단편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신은 누구를, 그 어떤 창조물을 더 사랑하지도 덜 사랑하지도 않으며 우리의 소망으로 그 어떤 것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대목이 떠오른다. 신만이 절대 진리를 간직하며 우리는 그 진리에 다가설려 영원히 기도할 뿐이다. 신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사랑일 것이다.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더 사랑함으로써 신에게 다가 갈 수는 없다. 그저 모두를 사랑해야하며 그 사랑은 신에게도 똑 같은 것일 것이다. 


소설의 결론에서 닐은 결국 지옥으로 가지만 신에 대한 무한한 사랑 속에서 존재한다고 이야기 한다. 지옥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인데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신을 대상으로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無란 대상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에 무가 아닌가. 만약 그가 신에 대한 사랑을 가질 수 있다면 그곳은 지옥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아마 닐이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신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기 때문에 결코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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