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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9. 09:00 - 독거노인

<Brooklyn>


한때 화려함을 좋아하던 시절에는 내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기를 바랬다. 그것은 물질적 욕구만이 아니라 정신속에 깊이 패어 있던 어떤 허영적 욕구들이 충만하던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한 모든 것들은 내 기준에 존재하는 화려한 미사어구가 필요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들이 잊혀졌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지나온 나의 몸과 마음은 그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화려함 주는 매력은 여전하다. 게다가 소설 같이 자의식이 강한 문학은 긴 이야기를 펼치는 가운데 자신을 가장 멋지게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함을 어딘가에, 무지불식간에 표면에 들어나도록 혹은 들어내 놓고 그런 장식들로 꾸밈으로써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아야 된다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브룩클린>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소설의 문장이 주는 화려함과 미려함이 소설 자체의 감동과 감정의 고조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까, 단순한 겉치례와 장화함을 걷어내고 근본적인 이야기만으로 얼마만큼의 몰입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이 소설을 읽으면서 화려한 미사어구 하나 없는 문장에 매료되어 읽은 것 같다. 거기에는 분명 나의 옛시간-가까운 현대적 시간-에 대한 욕구가 한몫 한 것은 분명하다.


<브룩클린>은 문장의 화려함이나 장화한 수사어구 같은 장식들이 철저히 배제된 채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 이야기 구조로 전제 이야기를 꾸려나가고 있다. 단순한 미사어구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평이한 문장들로 묘사된 아일리스의 감정적 흐름과 시간의 순차적 흐름이 그저 무심히 흘러간다. 이 단순하고 명쾌하도록 명료한 이야기가 어떻게 소설을 읽는 이에게 호소를 할까.


소설속의 이야기들 사건은 누군가가 과거의 어느 싯점을 회상하면서 플래쉬백되 듯이 순간 순간의 선명한 감정선들이 들어나지만 결코 일관되거나 무의식 속에 깊이 흐르고 있는 감정의 굵은 선들은 아니다(소설의 후반부에는 요동치는 감정적 혼란이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 짧은 감정이 표면에 들어나는 순간, 감정적 공명이 슬쩍 들어나 공명을 울리며 긴시간 조용했던 수면에 일어나는 작은 물결처럼 표면을 쓸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고요 속으로 되돌아가는 수면과 같이 감정도 평온해지고 만다. 명확한 고조가 들어나거나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 일상을 살아가는 어느 순간에 마주치는 시간의 흐름을 같이 느끼고 아닌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작은 파문들이 모여서 시간을 뒤돌아 보았을 때 불현 듯 그때는 그랬지라는 감정적 회상에 젖어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회상은 우리가 추억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유사한 기억들을 불러 일으킨다. 내 감정의 작은 움찔거림이 느껴지는 미묘한 흔들림, 그 흔림이 주는 작은 파문에 묻힌 행복감과 불안감 혹은, 때로는 느끼는 절망감들.


내 작은 감정들에 생긴 작은 주름들은 영원히 펴지지 않는 작은 파문들처럼 기억 어딘가로 몰려가 뒤늦은 바람에 떠밀려 제자리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때쯤이면 내가 그때 느껴것 감정은 이런 것들이 있었지 회상하며 작은 미소를 지을 것이고 시간이란 결국 이렇게 흘러가버렸구나하고 느낄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 시절의 불안감과 작은 행복들이 아일리스가 뒤늦게 돌아본다면 어떤 작은 감정들은 잊혀지고 어떤 감정들은 영원히 그녀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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