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16. 3. 2. 09:00 - 독거노인

<몸의 기억>


20세기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화두 중 하나로 몸을 대두 시켰다. 타인의 몸을 관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자신의 시선으로부터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타자화되어 있던 몸을 자신의 시선안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문제의 주변부에 두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중심에 두고 새롭게 인식하고자 하는 행위였다(내가 보기에 단순히 몸이라는 대상에 집중한 작가는 별로 없었던 듯하다. 대부분은 몸을 자신 정체성의 매체로서 이용할 뿐). 그 많은 작품들과 무수한 이데올러지적 마찰 속에서도 나는 왜 내 몸을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 그 시절의 몸은 젊음과 에너지가 충만했었고 나에게 괴성을 지르거나 신호를 보내지 않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밖으로만 돌고 있었고 정작 내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고 지나갔다. 결국 타인의 몸에는 거기에 남은 흔적 하나라도 놓칠까 두려워 세밀히 훓고 다시금 그 행위를 반복하며 의미를 찾고자 했지만 나의 몸은 그 시간속에 그저 함몰되어 있었을 뿐이다.


타인이 다가가기에는 학자적 혹은 관료적 면모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으며 타인들에게 쉽게 자신을 들어내지 않았던 이가 자기 자신을 향해서 가장 솔직한 시선으로 자신을 대면한 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지적, 학술적 명성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자기 자신을 들어다보며, 있는 그대로 날 것으러서 자신의 몸을 대면하고자 일기를 썼다.


정신적, 심리적 변화나 기분의 변덕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적 요소를 배제한 채 오로지 몸에 집중함으로써 어찌 보면 단순한 몸에 대해서 끊임 없이 썼다. 매일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몸에 변화가 생겼다고 느낄 때마다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몸의 변화가 나타나는 인생의 매 순간마다 그 반응들이 생생하게 전해 온다. 삶의 전체를 관통하는 단순한 몸의 변화가 삶의 궤적이 변해감으로써 어떤 의미로 변해가는지, 그 궤적을 단순히 성장하고 늙어가는 육체적 몸이 아니라 삶의 내면 혹은 정신과 소통하는 삶의 대변인으로써 창구적 역활을 하는 육체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나의 몸을 구석구석 들여다 본 적이 언제쯤일까. 아니 한번이라도 세세히 살펴보는 순간을 가졌을까? 나는 나의 유두와 생식기의 색깔이 언제 이렇게 변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며(분명 밝은 선홍색이었지만 이제는 어두운 색깔을 띄고 있다), 나의 눈은 작은 글씨를 보기 위해서 긴 시간이 필요하며, 머리 숱은 점점 줄어들어 어느덧 대머리가 되지 않았음에 그저 감사해야하는 정도가 되었다. 머리는 맑은 시간보다는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항상 멍한 상태가 더 많으며, 어느 순간 맑아졌나 느끼기도 전에 다시 어지러워진다.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는 수치들이 점점 올라가고 있으며 의사도 나이에 합당한 수치임을 인정하며 좀 더 관리를 잘하거나 처방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예전같은 몸매를 가지고 싶어서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렇게 쉽게 몸이 적응하지 못하며 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급격하게 흔들리는 추처럼 몸 상태가 흔들릴 뿐이다.


타인의 몸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저 어느 순간 혹은 일정 기간 뿐이다. 온전히 평생을 볼 수 있는 몸은 자신의 몸 밖에는 없다. 그런 몸에 대해서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며 몸이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기 전까지는 무심한 타인처럼 대한다. 아니 타인에게 가는 관심의 일부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몸이다. 그 몸은 우리가 임대를 하고 평생 신세를 지고 어느 순간 그 임대 계약이 끝나는 순간 깨끗하게 반납해야 한다. 나의 몸은 이제 임대 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지금까지 잘 버텨준 것에 고마워 하며 아직도 귀길이지 못한 내몸의 이야기에 자신의 무관심을 반성해 본다.


"도도 두려워 하지마, 너도 데려가 줄께" - 몸의 마지막 일기中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경제의 현상>  (1) 2016.03.21
<Banaras: City of lights>  (108) 2016.03.07
<Brooklyn>  (0) 2016.02.29
<White Mughals: Love and Betrayal in Eighteenth-Century India>  (0) 2016.02.22
<청년, 난민 되다>  (0) 201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