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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25. 09:30 - 독거노인

<토지>


조준구가 평사리에 나타나면서 마을의 변화는 시작된다. 최치수라는 인물이 마을의 거대한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평사리. 조선말의 유교적 분위기 속에서 500년 역사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시대적 변화에 한발 비켜서 있을 것 같은 구한말 농민들의 땅.


시스템 혹은 제도라는 것은 뿌리 내리기 힘들지만 변화 하는 것도 힘들다. 관성적 성격이 강한 이념적 시스템은 그 제도적 적용과 인민들의 흡수 그리고 적응등을 통해서 안정화 단계를 거치고 나면 보수적으로 그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할수 밖에 없다. 이조 500년동안 유교는 하나의 통치이념이자 사회적 이데올러지였고 이를 받들던 상부층 뿐만 아니라 하부층도 선영봉사와 충,효를 우선적 순위를 유지하는 고정된 사회를 만들어냈다. 


외세에 부딪히는 구한말의 한파는 평사리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할 수 있겠다. 구한말 학문적 매너리즘에 빠져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최치수, 이상적인 나라를 위해서 만주로 떠나는 이동진. 결국 시대적인 이데올러지에 갇혀버린 사람들의 살을 파고 드는 외세적 인물 조준구. 당연히 이 조준구에 의해서 평사리는 가혹한 수탈을 당하는 조선과 같은 운명을 걷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것이 정적이던 곳에 외부의 압력으로 흐름이 생기고 이는 사람들간에도 골을 만든다. 흐름은 어느 방향을 설정하기 마련, 시대적 변화에 부딪혀 맞서기도 하지만 그 힘이 강할때 결국 그들은 패자가 되어 다시 정착할 수 있을때까지 끊임없이 흘러 다닐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 강한 충격속에서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흔들리지 않는 최서희라는 인물은 마치 한반도의 내면에 흐르는 정신력처럼 강인하게 모든것에 맞서서 운명을 거부하고 집안을 정신을 지키는 인물로 나온다. 이는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하나의 정신적 맥이 아닐까.


시대의 부침에 따라서 평사리 마을은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언제나 바짝 엎드려 그저 시간과 세월에 순응하면서 살던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몰고온 그들 삶의 변혁에 순응하는자와 거부하고 거스르는 자들이 생긴다. 이는 보수적이고 가장 저항적인 인민들조차 시스템의 변화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그들나름데로의 삶의 방식을 변화 시키고 적응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 저항과 순응은 동학사상, 민족주의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회주의의 등장으로 격화된다. 어느 하나 성공적이지도 실패라고 할 수 없는 민족의 불운한 이념들이고 맥이었다. 그 뻗쳐나는 힘들을 분출할 수 없어 실패하고 패배하고 결국 머나먼 만주와 시베리아 벌판을 떠돌수 밖에 없었던 민중의 한과 울분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결국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생의 의미 그것은 어느것으로도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해야하며 외래사상으로 결코 설명될 수 없는 민족적, 내재적 속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힘을 떨어 뜨리는 부분이 있다면, 작가가 굳이 소설속에 나서서 이 모든 것들을 상세히 설명하려 하며 등장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너무 장광설을 늘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발휘하는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알 수 없는 장광설들만은 오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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